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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월급 많이 받으면 입 다물어야 하나

입력
2016.09.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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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노조’라는 비판은 감정적 대응

정부는 성과연봉제 의문점 해명해야

노조는 사회적 책임 외면해선 안돼

금융기관과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에 즈음한 정부의 반응은 한결 같다. 구체적 표현은 달랐지만 박근혜 대통령,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모두 “기득권 지키기” “집단 이기주의”라며 국민의 공감과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대적 고임금에 고용조건 또한 좋은 노조를 귀족노조로 몰아붙이며 제발 가만히 있으라는 지적은 살아가기 힘들거나 파업의 불편을 겪는 사람에게는 시원한 질책이다. 그러나 부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그들의 주장과 요구가 과잉 반영되는 현실과는 어긋나는 소리다. 약자의 목소리를 많이 경청해야겠지만, 임금과 고용 수준이 높다는 이유로 강자로 취급해 입을 다물라 하면 돈이 더 많은 ‘진짜 강자’에게는 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그러니 감정적 언사는 배제하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성과연봉제 자체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성과연봉제는 성과를 많이 낸 직원에게는 임금을 많이, 적게 낸 직원에게는 적게 주는 임금체계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비효율을 걷어내고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라 했고 임종룡 위원장은 “일 하는 사람을 정당하게 대우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식에는 두 전제가 깔려 있다. 하나는 공기업과 금융기관 등의 노동자가 일을 적게 하거나 생산성이 낮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과연봉제가 근로의욕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첫 번째 전제는 한국의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길고 취업자 노동생산성이 34개 회원국 중 22등에 그칠 정도로 낮았으니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리다. 장시간 노동이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문제는 노동생산성이다. 그러나 생산성 하락은 전세계적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는 기술 발전과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낮은 노동생산성은 노동자보다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정부와, 투자에 인색하고 사업 발굴 능력이 떨어지는 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는 뜻이다.

두 번째 전제는 일터에서 경쟁이 촉진되면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도 따라서 오를 것이라는 논리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그대로 믿기에는 반론과 반대 사례가 너무 많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월가의 지나친 성과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는 이미 상식에 속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GE 등 대기업들이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실감하고 정책을 폐기한 것이나 미국이 1978년 이후 세 차례나 공공부문 성과제를 도입하려다 포기한 것 역시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는 성과주의의 실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킨다. 지난 여름 유난한 더위 속에서 전기요금 체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는데도 한전은 A등급을 받아 직원 1인당 2,000만원 가까운 성과급을 받게 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나친 외주화로 보안관리에 구멍이 뚫리고 밀입국 사태가 잇달았는데도 A 등급을 받았다. 이렇게 달성한 성과에 의미가 있을까.

물론 근무기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호봉제가 절대선은 아니다.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직원과 게으르고 일 못하는 직원이 같은 대우를 받는 게 옳으냐는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조직이, 나아가 한 사회가 온통 경쟁과 성과에 내몰리면 전체적인 생산성이 올라간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당장 한국노동연구원이 정부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에서도 공공기관별 성격에 따라 임금 체계를 개편해야 하며 성과주의적 운용을 앞세우면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바 있다. 인천공항 밀입국 사태 때 지적됐듯 생산성을 높이려면 낙하산 인사부터 없애라는 요구도 많다.

정부는 철 지난 성과주의를 붙잡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여러 의문들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없으면 성과연봉제가 안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귀족노조니 ‘밥그릇 지키기’니 하면서 고임금 노조를 더 집요하게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노조가 할 일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터의 약자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귀족노조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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