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안 관객의 시선은 플라톤의 동굴에서 앞만 보도록 포박된 죄수의 그것과 닮았다. 미술관도 마찬가지여서, 화이트 큐브에 전시된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제목과 작품이 어울리는지, 작가 의도와 자신의 감상이 맞는지를 종종 확인한다. 관객 참여를 통해 작품 의미가 완성된다는 주장은 20세기 이후 넘쳐났지만 관객이 수동적이라는 고정관념은 여전하다.
‘관객은 예술가 의도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인가.’ 우리시대 미학은 더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관객은 ‘거리를 둔 구경꾼인 동시에 능동적인 해석가’로 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이미 자기 고유의 저작을 만들어낸다는 주장(랑시에르 ‘해방된 관객’)이다.
28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이태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올라퍼 엘리아슨 개인전 ‘세상의 모든 가능성’은 일련의 최신 미학계 화두를 적극적으로 구현한 전시다. 엘리아슨은 27일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보며 관람객 스스로 나 자신,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제 작품은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예술 작품은 우리 내면에 있는, 하지만 아직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믿습니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는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덴마크 국가관, 같은 해 런던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 ‘날씨 프로젝트’를 설치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기후, 환경, 난민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해온 공로로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가’로 ‘크리스탈 어워드’를 수상했다.
전시실 입구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선풍기가 관객을 맞는다. 한시도 쉬지 않고 거대한 시계추 운동을 하는 기계를 보고 ‘설마 이것도 작품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려는 찰나, 행여 머리에 맞을까 피하려는 찰나 큐레이터가 외친다. “1997년 작 ‘환풍기’입니다.” “이게 뭐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초기작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짭짤한 스낵 봉지를 열었을 때 같은 냄새가 온 전시장을 메운다. 전시장 한 켠을 메운 ‘이끼 벽’(1994)에서 풍기는 냄새다. 작품 재료인 순록 이끼는 건조하면 수축했다가, 물을 뿌리면 팽창하면서 특유의 냄새를 뿜는다. 4단 펌프와 호스로 물이 솟구쳐 오르는 ‘뒤집어진 폭포’(1998) 역시 시각보다 청각이 압도하는 작품이다.
압권은 전시장 2층에 설치된 단 한 점의 작품 ‘무지개 집합’(2016)이다. 지름 13m에 달하는 검은 원형 구조물이 미세한 물방울을 뿜어내는 이 작품은 원형 구조물 안에 들어가면 무지개로 둘러쳐진 오로라를 만난 것 같은 착시를 준다. 작가는 “무지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 빛, 인간의 눈이다. 관람 위치에 따라 무지개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작품은 각각의 감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소설가 보르헤스의 어록을 패러디 한 듯한 최첨단 미학관에 딱 들어맞는 작가이지만 입만 살아 있는 건 아니다. 모자이크처럼 엮은 거울을 여러 겹 겹친 ‘자아가 사라지는 벽’(2015), 네 종류의 화산암을 이어 붙힌 ‘무제(돌바닥)’(2004), 검은 바탕에 1,000여 개의 유리구슬을 박아 우주와 별을 연상케 하는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2016) 등은 예의 현학적 기획의도를 거둬내고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즐겨도 충분하다. (02)2014-6900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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