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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즈비언인 거 아무도 모르지" 미국 교육을 바꾼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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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즈비언인 거 아무도 모르지" 미국 교육을 바꾼 티셔츠

입력
2016.09.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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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류 제작 업체 '글로스랙스'가 만든 티셔츠에는 경찰 총격에 사망한 흑인들 명단이 나열돼 있다. 글로스랙스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의류 제작 업체 '글로스랙스'가 만든 티셔츠에는 경찰 총격에 사망한 흑인들 명단이 나열돼 있다. 글로스랙스 홈페이지 캡처

해외 젊은이들에게 티셔츠는 이미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자 정치ㆍ사회적 참여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백마디 말보다 한 장의 슬로건 티셔츠가 낫다’는 게 이들 생각이다.

민권운동 바람이 거세던 1960년대 인종차별 저항의 상징인물인 남아공 넬슨 만델라나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X 등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섰던 미국 젊은이들은 최근에는 백인 경찰 총에 맞은 흑인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사회운동가들이 만든 브랜드 ‘글로스랙스’는 2014년부터 백인 경찰이 쏜 총아 맞아 숨진 흑인들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다. 희생자가 발생할 때마다 그 이름을 추가하며 디자인을 바꾸는데, 최근에는 20여명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까지 나왔다. 회사 창업자인 랜디 글로스는 올해 7월 한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엔 매달 30장 정도 팔리는 티셔츠가 사건이 발생하는 직후에는 150장 가까이씩 팔리고 있다”며 “청년들은 희생자 명단이 적힌 티셔츠를 입으며 스스로 인종 차별에 항의하면서 다른 이들을 동참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거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가 학교로부터 제재를 받은 미국의 테일러 빅터양. LA타임즈 캡처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거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가 학교로부터 제재를 받은 미국의 테일러 빅터양. LA타임즈 캡처

티셔츠로 자신을 표현해 내려는 청년들의 시도는 보수적인 규율을 바꾸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만테카 지역 시에라고에 다니는 테일러 빅터(16)양은 올 초 학교로부터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거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학교 측에서 부적절한 성적ㆍ폭력적 표현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만테카통합교육구의 복장 규정을 제시하며 티셔츠 착용을 금지하자, 빅터 양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학교를 캘리포니아주동부연방지법에 고소했다. 법원은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줘 학교는 학칙을 바꿨다. 빅터 양 소송을 대리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는 “티셔츠에 적힌 문구는 테일러양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어떤 행위라도 교육 현장에서 검열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역설적으로 티셔츠 문화의 강력한 영향력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엄격한 제재 대상으로 분류한다. 이집트 정부는 2014년 아랍의 봄 3주년을 기념하는 시위에서 ‘고문 없는 국가’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마흐무드 모하메드 아흐메드(20)를 재판 없이 구금했다가 올 3월에서야 보석으로 석방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2월 나집 라작 총리 퇴진 및 부패척결을 요구하는 시위 현장에 등장한 노란색 티셔츠 착용을 금지했다.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정부 방침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고, 이 노란색 셔츠를 입으면 벌금 1,185달러(약 146만원)를 내도록 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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