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강원 횡성읍에서 굽이진 도로를 20여분가량 지나 도착한 정암2리. 오토바이를 탄 팔순 노인이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이날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보건소 무료건강검진을 알리느라 분주하다. 이 마을 토박이인 도호근(80ㆍ사진) 이장이다. 그는 1978년부터 지금까지 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앞서 1971년 3년간 이장을 맡았던 것까지 더하면 무려 42년째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마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셈이다. “1969년인가 결혼하던 해부터 7년간 반장을 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저를 좋게 봤는지 이장을 시키더라고요. 그 뒤로 지금까지 마을 일을 하고 있죠.”
도 이장은 지난해 큰 수술을 받았지만, 마을일 만큼은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 마을 주변 환경정비부터 퇴비생산 등 영농활동까지 요즘에도 마을의 모든 일이 그의 손을 거쳐야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도 이장이 반세기 가까이 마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은 소통. 그는 마을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을 자신의 권한으로 처리하는 법이 절대 없다. 마을 촌장과 임원진 등과 상의한 후 최종 결정은 마을 총회에서 결정한다. 도 이장이 세운 이 같은 원칙으로 정암2리에는 갈등이 생길 여지가 없다.
도 이장은 “42년의 이장 생활 가운데 교통오지였던 마을에 버스가 처음으로 들어온 1986년 7월 15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당시 정암2리에서 읍내를 가려면 8㎞가량을 걸어야 했다. 폭설이나 호우라도 내리면 주민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버스가 들어오려면 길을 닦아야 했는데 2년 가까이 주민들과 힘을 모아 직접 도로건설을 한 뒤 버스노선을 배치해달라는 민원을 가지고 군청 문턱이 닿도록 드나들었다”며 “주민들의 노력으로 교통오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다. 당시 도 의장은 자신의 대지 400㎡ 가량을 버스 종점으로 내놓는 통 큰 기부를 했다. 횡성군은 도 이장의 봉사 정신을 높이 사 지난 6월 2016년 횡성군민대상을 수여했다. 앞서 2006년에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마을 입구에 도 이장의 공덕을 기리는 송덕 기념비를 세웠다.
부인 전금례(76)씨도 도 이장 못지않은 마을 일꾼이다. 20대 중반부터 44년 간 부녀회장을 맡은 데 이어, 3년 전부터는 마을 노인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영락없는 부창부수(夫唱婦隨)다. 도 이장은 “사실 이장 일이 만만치 않아 그만두려고 마음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주민들과 아내의 도움으로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마을 일에 솔선수범하겠다”고 다짐했다.
횡성=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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