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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벌떼 인간’

입력
2016.09.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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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간지에 그런 사진이 난 적 있다. 온몸이 시커멓게 꿀벌로 덮인 사람. 꿀벌 인간은 기네스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벌로 뒤덮여 눈코입도 보이지 않는 지경에서 수십분을 버티고 푸드드 몸을 털어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만약 벌떼가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결국 인간의 실체 없이 벌떼의 형상일 뿐이었다면? 나는 이런 오싹한 장면을 요새 자주 상상하게 된다. 허공을 때리면 사라졌다가 다시 뭉친다. 누구인지 모를, 얼굴 없는 ‘벌떼 인간’들이 일상을, 그리고 사회를 위협한다. 특정한 문법을 만들어내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몸체를 만든다. 충동적이고, 근시안인 몸체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적을 괴롭히기 위해서, 부수기 위해서 단체로 행동한다. 사회를 망친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 14일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 9월 25일,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전문의 3인은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이 물대포 살수에 의한 뇌출혈”이라며 “의학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 7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부는 “경찰은 시위참가자인 백남기의 머리 부분에 직사살수하여 그가 바닥에 쓰러짐으로써 뇌진탕을 입게 했고, 쓰러진 이후에도 계속 직사살수”했다며 경찰의 책임을 명시했다. 그런데도 SNS엔 ‘빨간 우의’의 사내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글을 퍼 나르는 벌떼 인간들이 있다. 그 날의 동영상을 대체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다. ‘이게 팩트’라는 똑같은 말을 붙여 영상을 들고 오는 벌떼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시간에, 수많은 기자가 사방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고의로 그를 가격해 쓰러뜨린 누군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퍼뜨린다. 저신뢰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이 속한 벌떼 네트워크만 믿는다. 의사 말도 믿지 않고 서울중앙지법 판사 말도 신경 안 쓴다.

‘편견’이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듣는 행태’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의견의 편협함을 벗어나서 이런 담론 생산을 부추기는 출발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벌집 자체는 특정 커뮤니티일 수 있다. ‘팩트’라는 이름으로 콘텐츠를 퍼 나르고 유행하는 말의 문법을 만든다. 벌집을 나온 파편화된 개인들은 벌떼처럼 어떤 일에 달려들어 무언가를 ‘부수기 위한 싸움’을 한다. 우리를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력 과시용 싸움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이들은 ‘어뷰징’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말하고 있는지, 그 머릿수 싸움이 여러 결이 중첩된 총체적 사실을 압도해버린다. 벌떼에 휩싸이게 되는 개인은 위험하다. 그리고 벌떼에 휘둘리는 마을도 위험하다. 그런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고 싸우며 지겨워한다. 서로 못 믿게 된다. 공격받지 않는 것이 혹은 제대로 패버리는 것이 과제가 된다.

벌떼는 꿀을 따라 움직인다. 그 꿀은 자신이 원하는 ‘팩트’를 듣고 싶은 욕망이 아니다. 자기 세력이 이긴다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중독적이다. 로버트 린드 미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비 사회에서 소비재는 마치 약물처럼 작용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한 알 알약을 먹듯 나를 즐겁게 해 줄 네트워크를 찾아 약처럼 소비한다. 정서적, 사회적 문제를 조절하도록 한다. 그런데 잘못 쓰면 중독이다. 벌떼가 좇는 꿀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꿀벌 인간으로서 차지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중독이다. 키보드 뒤에 인간성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충동만 치운다. 나는 배설로 만드는 벌떼 인형이 두렵다. 벌떼 인형 말고 직시해야 할 ‘사람’의 존재가 있다. 우리가 똑바로 봐야 할 것은 물대포를 쏜 실체 있는 인간이다. 어이없는 싸움에 지치지 말고 똑바로 보자.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조소담 비트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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