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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흘’ 뱃길은 끊어졌지만…남한강 풍경길이 있었네

입력
2016.09.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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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바뀌면 인식의 지형도 변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충주는 수도권에서 2시간이면 넉넉히 닿을 수 있는 곳. 남한강 물길로 서울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누구도 뱃길을 떠올리진 않는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내륙 수로의 중심이었고, 사람과 화물을 실은 정기선이 서울에서 매일 운항했다는 사실은 거의 잊혀졌다.

풍경길 1코스 비내섬. 가을바람에 버드나무 이파리가 일렁거리고 있다. 충주=최흥수기자
풍경길 1코스 비내섬. 가을바람에 버드나무 이파리가 일렁거리고 있다. 충주=최흥수기자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 장수 되라네”

시인은 참 꼼꼼한 기록자다. 충주 노은면이 고향인 신경림의 ‘목계장터’는 더할 나위 없는 역사서술이다. 남한강에서 가장 큰 나루였던 목계나루에서 서울 마포나루까지는 배로 3일이 걸렸다. 물 흐름으로는 16시간 정도 걸리는데, 여주 양평 거치며 사람도 싣고 짐도 부리는 시간까지 감안해 사흘이다. 서울에서 거슬러 오를 때는 7일이 걸렸다. ‘아흐레 나흘’은 4일과 9일, 바로 목계 장날이었다. 목계는 평창 정선 영월을 거쳐 내려온 떼몰이꾼들이 당연히 하루를 묵어가는 지점이었고, 서울에서 소금과 공산품을 실어온 선원과 장꾼들로 흥청대던 곳이었다. 이상기 박사(충주전통문화회 회장)에 따르면 목계나루에서 가장 큰 규모인 ‘김유관 여각’은 안채와 객실이 각 5칸과 17칸, 마방(馬房)과 창고가 40칸에 이를 정도였다. 인근에는 벼 1만석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도 있었다.

목계나루 제방의 신경림 시비.
목계나루 제방의 신경림 시비.
현재 목계나루는 카약 물놀이를 즐기는 곳으로 변했다. 강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국도에 2개의 교량이 놓여 있다.
현재 목계나루는 카약 물놀이를 즐기는 곳으로 변했다. 강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국도에 2개의 교량이 놓여 있다.
용머리 형상의 샘이 설치된 샘개나루.
용머리 형상의 샘이 설치된 샘개나루.
뱃길은 끊어졌지만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샘개나루터를 증명하고 있다.
뱃길은 끊어졌지만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샘개나루터를 증명하고 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시의 첫 구절은 순탄치만은 않았던 시인의 인생 여정을 담았다. 지금 목계나루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마다 북적이던 장꾼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나루터 제방에 ‘목계장터’ 시비만 쓸쓸하다.

강을 가로지르는 2개의 큰 다리(평택제천고속도로 남한강대교와 38번 국도 목계대교) 바로 아래에 위치한 나루터엔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수상레저 체험장이 들어섰고, 둔치에는 대형 메밀밭을 조성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복합전시공간인 ‘강배체험관’이 자리잡았다. 나루에 얽힌 사료와 생활문화 자료를 전시하고, 노를 젓는 체험도 할 수 있게 꾸몄다. 주막과 저잣거리도 마련했는데, 주모와 상인이 모두 떠난 곳에 새로 만든 터라 예천 삼강주막 같은 아담함과 정겨움은 부족하다.

목계나루가 처음부터 충주 수운물류의 중심은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는 탄금대 하류에 덕흥창이 있었다. 나루터 언덕은 우륵이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소리가 가장 그윽하게 들리는 곳이어서 청금정이라는 정자도 있었다고 전한다. 조선 태종 때는 그보다 조금 아래에 경원창을 개설했다. 나루터는 사라졌지만 세곡창고가 있던 마을 즉, 창동이라는 지명과 민속전통주인 청명주가 남았다. 24절기 중 청명절에 쓰기 위해 빚었다는 청명주는 조선시대부터 궁중에 진상하는 술이었고, 지금도 충주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창동리 마을에서 공장과 전시장을 볼 수 있다. (내비게이션 : 청금산장 검색)

조선 중기에는 세곡창고를 창동리에서 다시 약 10km 하류의 가흥창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경원창 구간의 강바닥이 고르지 못해 더러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목계나루는 가흥창 조금 상류 맞은 편이다. 가흥창과 가흥나루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었다면 목계나루는 민간터미널이었던 셈이다. 덕흥창과 가흥창이 있던 자리엔 어떤 안내판도 없어 실제 찾아가기는 어렵다.

남한강 수계에서 충주의 가장 하류에 해당하는 앙성면에는 샘개나루터가 남아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자리잡고 길손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100여 년 전까지 소금과 농산물 거래가 활발하던 곳이었고, 최근까지도 샘개 주민들이 배를 이용해 맞은 편 원주 솔미마을과 왕래를 해오던 곳이다. 샘개는 수온과 수량이 항상 일정한 맑은 샘이 솟는 포구라는 뜻. 최근 이름에 걸맞게 용의 입에서 물을 뿜는 형상으로 샘을 복원했다.

▦물길 대신 걷는 충주 풍경길

끊어진 뱃길 대신 최근 충주시는 남한강을 따라 ‘풍경길’을 정비했다. 남으로 경상북도, 북으로 경기도까지 연결하는 총 9개 코스다. 호수와 강변 풍경을 보며 걷는 ‘비내길’과 ‘종댕이길’, 한적하고 울창한 산길인 ‘하늘재길’이 대표적이다. 목계나루는 풍경길 2코스 ‘중원문화길’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비내섬엔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뤄 원시 늪을 걷는 느낌을 준다.
비내섬엔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뤄 원시 늪을 걷는 느낌을 준다.
그림 7 비내길에서 보는 남한강 풍경. 이따금씩 물고기를 잡는 쪽배가 지난다.
그림 7 비내길에서 보는 남한강 풍경. 이따금씩 물고기를 잡는 쪽배가 지난다.
비내섬 상류 늪지대에서 새들이 먹이를 잡고 있다. 조류관찰 망원경에 휴대폰을 대고 찍은 모습.
비내섬 상류 늪지대에서 새들이 먹이를 잡고 있다. 조류관찰 망원경에 휴대폰을 대고 찍은 모습.

풍경길 1코스 ‘비내길’은 샘개나루에서 약 8km 상류 지점에 위치한 비내섬과 앙성온천을 잇는다. 전체 7.5km 중 강을 따라 걷는 구간은 조터골에서 비내섬까지 약 2km. 목계나루 하류에서 비내섬에 이르기까지 3개의 하중도(河中島)가 거대한 늪지대를 형성해 생태 축을 이루고 있다. 겨울 철새들이 날아오기 전인데도 일부 청둥오리와 왜가리들이 늪지대에서 먹이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이면 고니들이 떼로 몰려와 장관을 이룬다.

비내섬은 군사훈련기간을 제외하면 차량과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2개의 다리로 연결했다. 그 덕에 4륜 구동 차량이면 섬 깊숙한 곳까지 둘러볼 수 있다. 산책 삼아 천천히 걸으면 원시 늪을 거니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따금씩 강바람에 희번득거리는 버드나무 이파리가 초가을의 쓸쓸함을 위로하고, 가을이 깊어지면 억새 군락이 춤을 춘다.(내비세이션 : 비내섬 검색)

종댕이길 전망대에서 본 충주호 풍경.
종댕이길 전망대에서 본 충주호 풍경.
일부러 닦은 길이지만 숲길의 호젓함은 그대로 남았다.
일부러 닦은 길이지만 숲길의 호젓함은 그대로 남았다.
종댕이길 마지막 구간에 설치된 출렁다리.
종댕이길 마지막 구간에 설치된 출렁다리.

충주시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코스는 충주호를 끼도 도는 ‘종댕이길’이다. 3면이 종지처럼 동그랗게 호수에 둘러싸인 심항산(해발 350m) 자락을 따라 낸 걷기길이다. 잔잔한 호수와 높은 산세가 빚은 풍경이 깊고도 은은하다. 계명산자연휴양림 맞은편에 위치한 숲해설안내소를 출발해 한 바퀴 돌아오는데 약 4km, 1시간 정도 걸린다. 시작지점에서 호수 근처까지 가파르게 내려간 만큼 막바지에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것을 빼면 높낮이가 거의 없어 순탄한 편이다. 3~4군데 호수 가까이 설치한 전망대에 서면 강바람과 산바람이 시원하다. 울창한 상수리나무 군락에 군데군데 굴피나무가 섞인 오솔길을 통과하면 끝부분은 솔숲으로 이어진다. 닳고닳은 옛길이 아니라 일부러 낸 길이어서 조금은 단조롭다.(내비게이션 : 계명산자연휴양림 검색)

반면 ‘하늘재길’은 신라 아사달왕 3년(156)에 개통한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길이다. 경북 문경에서 충주 수안보면을 연결하는 고개 정상인 하늘재(계립령)에서 미륵대원지까지 약 3km 구간이다. 미륵대원지는 고려초기 석굴사원 터이기도 하고, 하늘재를 넘는 관원들이 쉬어가는 원(院)터이기도 하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산책하듯 호젓하게 숲길을 걸을 수 있다. (내비게이션 : 미륵대원지 검색)

충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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