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부작 드라마, 진짜 만만치 않던걸요. 어휴~” 2월 첫 촬영을 시작해 지난 20일 종영하기까지 8개월간의 대장정이었다. 그 사이 세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배우 강지환(39)은 MBC 드라마 ‘몬스터’를 마친 뒤 가장 먼저 미용실에 들러 머리 염색부터 했다. “요즘 유행한다는 아이돌 헤어스타일을 참고해 봤어요. 몇 달간 경직된 모습으로 살았더니 외모를 바꾸고 싶더라고요.” 27일 서울 한남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기분 좋게 끝냈기 때문에 솔직히 섭섭하기보다 후련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몬스터’는 기득권층의 욕망에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를 그렸다. 강지환은 밑바닥부터 서서히 힘을 키워 끝내 악인들을 응징하는 주인공 강기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선 굵은 연기로 빚어냈다. 강기탄과 함께하며 강지환도 꽤나 파란만장한 나날을 보냈다. 촉박한 스케줄에 집에 못 들어가기 일쑤였고, 급하게 이동하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도 당했다. 촬영 중 입은 화상과 장염으로 몸도 축났다. “드라마 제목이 ‘몬스터’이니까 ‘나중엔 내가 괴물이 되려나 보다’ 자기 최면을 걸면서 버텼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몬스터’ 안에는 악인들이 득시글거린다. 악의 소굴에 연민이 끼어들 틈은 없다. 권력에 눈이 멀어 악행을 일삼는 변일재(정보석)와 원대한 야망에 불타는 정치인 황재만(이덕화),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재벌가 서자 도건우(박기웅), 광기로 번뜩이던 재벌 후계자 도광우(진태현) 등은 시청자들 사이에 ‘악역 어벤저스’라 불렸다. 아수라장에 뛰어들어 살벌한 악인들과 맞서야 했던 강지환은 변일재가 사형 당하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 일부러 구경까지 갔다고 한다. “드라마 안에서 제가 변일재 때문에 너무 고생했잖아요. 제 눈으로 직접 변일재의 최후를 확인하고 싶었어요(웃음). 천벌을 받아 마땅하죠.”
하지만 카메라 밖에선 변일재를 연기한 정보석과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다. 데뷔 당시 ‘리틀 정보석’이라 불린 적이 있어서 평소 동경했다고 한다. “(정)보석 형님께 잘 보이고 싶었어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기로 한 획을 그은 분이시잖아요. 연기 면에서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어요. 많이 칭찬해주시고 배려해주셔서 금세 친해졌어요. 다음 주에 형님 댁에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복수의 끝은 권선징악이다. 하지만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강기탄은 시력을 잃었고 오수연(성유리)과의 사랑은 열린 결말로 끝났다. 복수만을 위해 내달린 그에겐 좀 서운할 법하다. “속시원하진 않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워요. 마침표를 꽉 찍어버리면 답답했을 것 같아요. 다만 멜로는 조금 아쉬워요. 현실의 권력형 비리들을 방대하게 다루다 보니 멜로를 밀도 있게 그리진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야망 있는 오수연보다 강기탄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줬던 도신영(조보아)과 맺어져도 좋을 것 같아서 내심 기대하기도 했어요(웃음).”
KBS2 ‘빅맨’(2014)과 SBS ‘돈의 화신’(2013)에 이어 ‘몬스터’까지 ‘강지환의 복수극’ 3부작이 완성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그에게 ‘복수극 전문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그는 “다음 작품을 고를 땐 장르도 고려해야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몬스터’는 방영 내내 10%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다. 최종회는 14.1%를 찍었다. 같은 시간대에 SBS ‘닥터스’와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 ‘구르미 그린 달빛’ 등 막강한 경쟁자들이 차례로 등판했지만, ‘몬스터’는 뚝심 있게 제 길을 걸었다. “‘닥터스’에 밀려났을 땐 상처도 받고 지치기도 했어요. 그래도 6개월 가까이 10%대 시청률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저희는 리우올림픽이 닥쳐와도 끄떡 없었어요. 특히 50~60대 주부 시청자들이 ‘몬스터’를 많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한 시청대를 공략해서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몬스터’의 힘이 아니었나 싶어요.”
강지환은 1977년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마흔이다. 그는 “‘몬스터’ 덕분에 40대의 첫 단추를 잘 꿴 것 같다”며 “초심을 다시 깨닫게 해준 작품”이라고 의미를 새겼다. “연기를 할 때 설레고 신나지만 힘들 때도 있어요. 그 과정이 계속 반복되죠. 저만의 장점을 찾기 위해 더 고생하고 경험해봐야 할 거 같아요. 그러면 언젠가 배우가 제게 천직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죠.”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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