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 논의는 곰곰이 생각해 봐도 소모적 논란으로 그칠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선 정국에 표심을 자극할 민감한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 안보상황에 맞지 않아 탁상공론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다. 국가안보라는 대의를 생각한다면 모병제 같은 충원방식 보다 적의 당면한 위협과 잠재적 위협을 종합 고려해 이길 수 있는 군의 모습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더욱이 작금의 안보 상황은 모병제를 논의할 정도로 여유 있는 시점이 아니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통일대전’ 운운하는 등 어디로 튈지를 모르고, 핵과 미사일마저 그의 손아귀에 쥐어질 것으로 보여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촉발된 모병제 논란은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모병제 찬성론자는 몇 년 후부터 인구절벽이 발생해 지금의 병력 수준을 유지할 수가 없고, 전쟁양상도 첨단 정보전?과학전으로 변화하고 있어 이에 부응하는 ‘작지만 강한 군’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드는 인력비용은 개인당 월 200여만원으로 그렇게 많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적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대부분 나라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무려 120만 상비군과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한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 우리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 적정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다. 인구 급감에 대비하여 중ㆍ장기적 관점에서 전체적인 부대 수와 병력을 무리 없이 줄이면서도 전투력을 배가할 수 있는 국방개혁 프로그램은 이미 가동하고 있다. 모병제로 신병에게 월 200만원을 준다고 할 때 군인이 되고 싶은 열정이 큰 젊은이는 지원할 수 있겠지만 30만명을 그 정도 보수로 충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군은 모병제와 유사한 ‘유급지원병 제도’를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병 복무 기간 종료 후 연장복무기간에 하사로 월 200여만원을 받고 근무하는 제도인데, 2015년부터 지원자가 줄어 목표 운영률의 50%도 못 채우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모병제를 실시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원자를 모집하는 게 만만치 않은 문제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또한 신병에게 월 200만원을 준다고 할 때, 현재 월 100여만 원에 불과한 신임 장교에게는 300만원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계급별 연쇄 인상이 불가피하고 연도별 인상률과 연금수급자의 급등을 감안하면 예산 소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 군의 높은 학력이 저하되는 것도 피할 수 없게 되고,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든다고 하지만 ‘안 가도 되는 군대’로 전락하면서 ‘금수저는 안 가고 흙수저만 갈 것’이 아니라 ‘흙수저도 금수저도 안 가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전쟁 양상도 첨단장비 위주로 변하고 있지만, 험준한 산악이 많은 북한지역의 특성과 개전 초 대량피해의 불가피성, 그리고 안정화 작전을 위해서는 병력이 일정 수준 이상 필요하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효과적인 한미연합작전을 위한 역할분담 차원에서 한국군의 적정병력 유지는 필수적이다. 통일 후를 생각하더라도 주변국들의 잠재적 위협을 고려해야 한다. 독일도 통일이 되고 20여 년이 지나 전쟁위협이 해소된 다음에야 모병제로 전환했다.
게다가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적 통합과 젊은 시절 병영공동체를 통한 국가관과 정체성의 확립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신적 가치이자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공연히 소모적인 논쟁거리를 만들 것이 아니라 현 징병제하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보완함으로써 싸워 이기는 군대로 거듭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장광일 동양대 국방과학기술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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