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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은행원 여동생

입력
2016.09.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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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여동생은 또 샐샐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사람들을 여럿 만날 때마다 하는 짓이다. 휴대전화 너머로 내 일행들이 다 들을 수 있게끔 큰소리로 말을 한다. “언니들! 제가 다음에 꼭 밥 살게요! 잘 부탁드려요!” 은행의 통합멤버스 앱을 깔아달라는 부탁인 거다. 익숙한 일이라 친구들도 흔쾌히 들어준다. 내 친구들은 신용카드를 만들었고(만들자마자 잘라버렸고) 은행메신저 앱도 깔았고(깔자마자 지웠고) 요전에는 은행에서 내놓았다는 쇼핑몰 앱도 깔았다(물론 그것도 지웠다). “내 행원번호 잘 넣은 거 맞지?” 매일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여동생은 아이들을 돌봐주는 엄마네 집에 들러 저녁을 얻어먹는다.

“아이고, 죽겠어. 이놈의 은행 빨리 때려치워야지.” 하소연을 하면서도 사표를 낼 생각은 절대 없다. 엄마에게 합법적으로 용돈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데다, 직장을 그만둔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레이저 치료로 매끈해진 피부를 어디에다 자랑할 것이며, 예쁜 구두 한 켤레를 사도 월급을 받아오는 한 남편의 눈총 따위 받을 일이 없었다. 실제로 여동생은 과장으로 승진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육아휴직 4년으로 남들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과장이 되던 날, 동생은 폴짝폴짝 뛰었다. “나는 은행 전 지점에서 제일 옷 잘 입는 과장이 될 거야!” 과장이 되면 유니폼 대신 사복을 입고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추석이잖아. 가족들 다 모일 거 아냐. 20, 30개는 충분히 할 수 있어, 응?” 앱 실적을 쪼아대는 지점장의 잔소리도 그래서 다 흘려 들을 수 있었단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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