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결정 후 괴로워해…심리적 압박 느낀 듯
아내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 문자 남겨
지난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경찰관은 재심 결정 후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0시 50분쯤 전북 익산시 한 아파트에서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A(44) 경위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A경위는 지난달 25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재심 세 번째 공판에 출석한 증인 2명 중 한 명이었다. A경위는 재심공판에서 “사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바 있다.
유족들은 “A경위가 재판이 시작된 뒤 괴로워했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말했다. 숨지기 전날도 동료와 오후 11시까지 술을 마시고 아내에게 “너무 힘들고 괴롭다”며 재심 증인 출석 후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A경위는 귀가 후 2시간이 지났을 때쯤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휴대전화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잘 살아라.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은 진범으로 지목된 최모(32ㆍ당시 16세)씨가 사건이 발생한 2010년 수사 과정에서 불법 체포ㆍ감금, 폭행으로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세)씨를 시비 끝에 살해했다고 자백한 사건이다.
최씨는 1심과 2심에서 각각 징역 15년, 10년을 선고 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포기해 결국 형이 확정돼 2010년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이후 또다른 용의자가 진범이라는 첩보가 수사기관에 입수되고 관련 증언도 잇따라 나왔으며, 경찰의 초동 수사 부실과 최씨에 대한 불법 체포ㆍ감금ㆍ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됐다.
최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했으며 광주고법에서는 최씨가 불법 체포와 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한 점,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을 담당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경찰 측 증인을 채택한 이유는 어느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리려는 것은 아니고 초동 수사에서부터 잘못된 부분이 확인됐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며 “고인의 죽음에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전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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