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액 부분도 구체적이지 않아
홍준표 재판엔 큰 영향 없을듯
서울고법이 27일 이완구(66)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사망 전 폭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이 ‘앙심에서 나온 허위진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핵심 증거를 배척함에 따라 이 전 총리가 무죄를 선고 받았다.
먼저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사망 직전인 지난해 4월 9일 경향신문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 전 총리와 관련해 폭로한 대목이 ‘허위’일 수 있다고 의심했다. 성 전 회장이 인터뷰 당시 자신에 대한 수사의 배후가 이 전 총리라 여겨 강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이 있었다고 짚었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주도해서 (수사를)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성 전 회장의 언급이 그 근거가 됐다.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에 대해 “사정 대상 1호” 등이라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의혹에 대해 “뭐 잘못한 게 없는데” 등으로 부인ㆍ축소했다고 본 재판부는 그의 인터뷰 내용이 믿을 만하다고 보지 않았다.
1심도 성 전 회장이 배신감에 허위로 말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기는 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진술이 가감없이 전달ㆍ검증되길 바랐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사망한 공여자의 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은 “(리스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이 전 총리의 공소사실에 관련한 부분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증거로 삼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 특별히 믿을 만한 상태에서의 진술이 아니면 증거로 삼아선 안 되는데 1심이 잘못 인정했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이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수사를 받으며 정치인에 대한 금품 제공 진술을 털어놔야 하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정도 고려됐다.
아울러 금품 전달과 관련해 성 전 회장의 얘기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이 전 총리의 혐의 입증에 이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판부는 인터뷰 녹음파일에서 경향신문 기자가 이 전 총리에 얼마를 줬는지를 물으니 성 전 회장이 ‘한, 한, 한 3,000만원’이라고 답한 부분을 짚었다. 재판부는 “금액을 말하기 전에 ‘한’을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을 단순한 성 전 회장의 언어습관으로 돌리기에는 (리스트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여액 진술과는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그가 쓴 메모에도 홍준표 경남지사 등 다른 6명의 이름 옆에는 금액이 적혀 있었지만 이 전 총리는 이름만 적혀 있었던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핵심인 성 전 회장의 진술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이상 나머지 수행비서 등 측근들의 진술은 ‘곁가지’라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역시 성 전 회장의 진술을 증거로 삼아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홍 지사의 항소심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 지사 사건에선 성 전 회장의 돈 전달 심부름을 했던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자백과 홍 지사 측근 2명의 윤씨에 대한 회유 시도 전화 등 살아있는 이들로부터 나온 증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고법 관계자도 “이날 선고는 성 전 회장의 진술 중 이 전 총리에 대한 부분만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선고 뒤 “검찰권의 과도한 행사는 자제돼야 한다”면서 “상고심이 남았으니 대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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