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임기내 일본 보수진영의 숙원인 헌법개정을 위한 방아쇠를 당겼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해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아베 총리가 26일 임시국회 개회 연설에서 “헌법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며 그 안을 제시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책임이다”며 회기내 ‘전쟁 가능한 국가’ 탄생을 의미하는 헌법개정 논의 착수를 당부했지만 야당측이 공동투쟁 복원을 시사하며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27일 자민당과 야당은 국회에서 정면 충돌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민진당 간사장은 중의원 본회의 대표질문에서 “진심으로 개헌을 논의할 생각이라면 국민의 권리를 빼앗고 국가중심체제로 바꾸는 자민당 개헌초안을 당총재로서 철회하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철회하지 않으면 논의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개헌논의 초반 최대쟁점으로 개헌초안의 폐기 여부가 등장했다. 자민당이 야당시절이던 2012년 내놓은 이 안은 헌법 9조를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개정초안에는 이밖에 일왕을 ‘일본국의 원수’로 지칭하고 국가를 ‘기미가요’로 명기하는 내용도 담겨있어 지나치게 우경화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민진당측은 전날 아베 총리가 개회 연설에서 “자위대에 경의를 표하자”고 유도하자 자민당 의원들이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친데 대해서도 “정상이 아닌 사태다. 사전에 합의해 조직적으로 행동한 것 아니냐”며 비판을 쏟아냈다. 심지어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인 자민당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도 “나도 깜짝 놀라 무심코 일어났지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전날 국회에서 ‘여야 간 의견차이를 뛰어넘는 헌법심사회 논의’를 거론하며 초당적 차원에서 힘을 합치기를 강조했지만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집권 자민당내에서 “야당의 반대에 이어 국민투표에서마저 부결된다면 개헌은 영원히 물건너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제1야당인 민진당이 최근의 유연한 입장에서 돌연 자민당 개정안을 반대하던 과거의 강경태세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렌호(蓮舫) 신임 대표는 당초 대표경선 과정에서 당내보수파를 의식하며 아베 총리의 개헌논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26일 기자들에게 “헌법심사회는 개별정당 초안을 놓고 심사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향후 정치스케줄에 대해 냉소적 반응을 드러냈다. 전임 오카다 가쓰야 대표 시절의 ‘아베 정권내 개헌반대’ 노선이 복원되는 상황인 것이다.
공산당, 사회당, 생활의당 등 나머지 3개 군소야당도 아베의 개헌의욕에 찬물을 끼얹고 나섰다. 이들은 “헌법심사회 논의에 참여하면 전열이 순차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며 민진당을 압박하고 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위원장은 “잘못된 정치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 야당역할이다”며 개헌드라이브에 들러리를 서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2012년말 취임한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18년 9월로 끝이 난다. 2년내 개헌 실현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은 이유다. 이에 따라 자민당 당규를 고쳐 임기를 연장하는 한편, 헌법9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숙원을 단계적 개헌으로 미뤄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민당은 일단 내달 중순 헌법심사회 논의를 시작해 빠르면 내년 정기국회 중 합의된 개헌안 마련을 목표로 삼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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