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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살고, 바다에 죽고... 제주 해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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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살고, 바다에 죽고... 제주 해녀의 삶

입력
2016.09.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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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영화 '물숨'은 바다에 살고 죽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세세히 돌아본다. 진진 제공
다큐멘터리영화 '물숨'은 바다에 살고 죽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세세히 돌아본다. 진진 제공

한번 일을 시작하면 음식은커녕 8시간 넘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다. 꽤 오랫동안 숨을 참았다가 내쉬기를 반복하며 작업해야 한다. 폐활량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등급이 정해지고 작업 구역도 나뉜다. 1년 수입은 2,000만~4,000만원 가량. 작업 구역이 수입에 큰 변수로 작용하나 개인의 업무 능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10대 후반인 종사자도 있고, 7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사람도 있다. 이쯤에서 질문. 어떤 직업일까.

답은 해녀. 직업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성별이 고정돼 있다. 여자만이 하는 일. 험한 파도를 헤치고 바다 밑을 훑으며 해산물을 채취한다. 해녀를 제주도의 풍광을 구성하는 필수요소 정도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해녀의 구체적인 일상은 낯설다. 다큐멘터리영화 ‘물숨’은 삶의 터전이 곧 무덤이 될 수 있는 위태로운 ‘작업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해녀의 진모를 조명한다.

배경은 제주도의 부속 섬 우도다. 제주 해녀 4,000여명 중 400명이 이곳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해녀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그들의 신산한 삶을 돌아본다. 해녀들의 등급, 등급에 따른 활동 영역, 동시에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 해녀들의 불문율, 해산물 채취 욕심에 참을 수 있는 숨의 한계를 넘어가는(물숨이라 칭하며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작업의 위험성, 자녀들 다 키워놓고도 바다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등이 사계를 바탕으로 세세히 펼쳐진다. 계절별로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 가장 바쁜 시기 등도 기록하고 있다.

4남매 양육을 위해 재혼을 마다하고 물질을 해 온 80대 해녀나 타고난 폐활량에 기대 가장 먼 바다까지 나가 물질을 하는 50대 해녀 등의 사연이 모여 제주도 해녀의 삶이라는 모자이크를 만들어낸다. 양떼구름의 결을 지니며 잔잔하던 파도가 사람을 집어삼킬 듯 야수처럼 돌변하는 장면 등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바다의 속성을 보여주면서도 해녀를 둘러싼 험난한 환경을 새삼 깨닫게 한다. 바다에 의지해 사는 해녀의 모습은 제주의 삶의 풍경을 대변하기도 한다. 영상 인류학이 따로 없다.

기록물로서의 가치만 있는 게 아니다. 해녀들의 모습을 하늘에서 조망하거나, 바다 속에서 바라본 장면들, 제주의 풍광이 자연스레 앞뒤를 이으며 미적 감흥까지 더한다. 바다에서 사회 활동을 시작한 뒤 바다에서 삶을 영위하다 바다에서 숨을 거두는 해녀의 운명 같은 삶이 가슴을 누른다.

영화는 7년 동안의 취재로 만들어졌다. 고희영 감독은 제주 출신으로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작가 등으로 활약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유명 작가 송지나가 내레이션 원고를 담당했고, 재일동포 유명 음악인 양방언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29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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