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든 어버이연합이든 하나는 내놔야…맨입으론 안돼”
與, 김부겸 의원에 한 말 공개
“입법부 수장 자격 없어” 사퇴 촉구
“2野, 해임안 철회 조건으로 與와 세월호 등 타협 시도했지만 불발”
박지원 “與, 국민의당 끌어들이려 개헌특위 설치 제안했다” 밝혀
丁, 국감 2~3일 연기 제안 후 장고
국정감사 보이콧을 선언한 새누리당은 26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맨 입으로 안 되지”라고 한 발언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정 의장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야당이 요구해 온 세월호 특별조사위 활동기한 연장 및 어버이연합 청문회와 해임건의안 처리의 연계를 거론하며 ‘야당의 하수인’을 자처했다는 게 새누리당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정 의장 측은 “투표 도중 의장석을 찾은 의원과의 대화 내용”이라며 “여야 간 협상과 타협이 이뤄지지 않고 해임건의안이 표결로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회 영상회의록에 따르면, 정 의장은 지난 24일 0시 30분쯤 해임건의안 투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의장석에 다가온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김 의원에게 “응? 안 돼. 세월호나, 세월호든 뭐든 다 갖고 나오라는데 그게 안 돼. 어버이연합 둘 중의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 그냥 맨 입으로 안 되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투표 당일 지역구에 다녀오느라 밤늦게 상황이 악화된 배경을 물어봤다”며 “정 의장이 여야 3당에 원만한 협상을 주문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내용이 녹음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0시 18분쯤 정 의장이 해임건의안을 상정하자, 이에 반발해 전원 퇴장했었다.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정 의장의 발언이 공개되자 “날치기 폭거를 명백히 인정하는 ‘셀프 증언’”이라며 “막 직무를 시작한, 흠결도 없는 장관을 표적 삼아 밀실거래를 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특조위 연장과 어버이연합 청문회를 해임건의안과 맞바꾸려는 정치흥정이 이뤄지지 않으니 날치기했다고 자기 입으로 고백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입법부 수장이 될 자격이 없는 분”이라고 정 의장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정 의장 측은 “지난 5일 야3당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을 합의ㆍ발표한 이후, 정 의장이 여야간 이견에 대해 중재에 나선 건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정 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이 추석 기간 미국 방문 도중에도 해임건의안 철회와 세월호ㆍ어버이연합 문제 수용을 연계해 의견을 교환해 왔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의장은 미국 외유 중에도 극한적으로 여야가 대치하지 말고 여당은 야당이 원하는 것을 하나 양보하고, 야당은 해임건의안 강행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고 밝혔다.
야권에 따르면 우 원내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방미 도중 해임건의안 철회 조건으로 세월호 특조위 연장을 요구했으나,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절대 못 받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한다. 또 다른 카드였던 어버이연합 청문회도 어버이연합을 지원했던 전경련이 최근 불거진 미르ㆍK스포츠재단 의혹에 연루되면서 새누리당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배경에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 세월호 특조위 연장을 관철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세월호 특조위 연장에 대해 청와대가 요지부동인 데다, 어버이연합 청문회마저 권력 비선 실세를 겨눈 미르ㆍK스포츠재단 의혹과 맞물려 협상의 여지가 사라지면서 여야의 정면 충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러한 야당의 전략을 ‘정치흥정’, ‘밀실거래’라고 비판한 새누리당이 개헌특위 설치 제안을 국민의당에 제안한 사실을 공개했다. 국민의당이 21일 야3당 합의에서 한 발 물러나 해임건의안 제출에 동참하지 않자 개헌특위 카드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의당과의 협상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부인했으나, 박 위원장은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야당이 하면 불륜이냐”고 꼬집었다.
한편 정 의장은 국회 파행 장기화를 막기 위해 외부 일정을 최소화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정 의장은 이날 우 원내대표와 박 위원장과의 회동에서 여당을 설득하기 위해 2, 3일간 국감 연기를 제안했으나, 두 야당은 야당 단독으로라도 국감을 실시해야 한다는 기류가 더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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