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9월 27일
워런 위원회(Warren Commission, 정식 명칭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관한 대통령 직속위원회)의 888쪽 조사보고서가 1964년 9월 27일 공개됐다. 요지는 케네디 암살이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의 단독 범행이며, 오스왈드와 그를 살해한 잭 루비(Jack Rdby)의 배후에 어떤 인물이나 단체도 없다는 거였다. 보고서는, 진범은 따로 있거나 더 있다는 대중의 의심과 음모의 전모를 밝혀주리라는 기대를 저버렸다. 케네디 암살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증폭됐다.
케네디는 63년 11월 22일 정오 무렵 텍사스 주 댈러스 카 퍼레이드 도중 수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격을 당했다. 발사된 3발 중 첫발은 탄두조차 발견되지 않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총탄은 각각 케네디의 목과 머리를 관통했다. 직후 인근 파크랜드 병원으로 호송됐지만 그는 숨졌고, 곧장 베네스더 해군기지로 이송돼 부검됐다.
사건 정황을 두고 제기된 의혹은 탄두의 방향 등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피격 현장과 퍼레이드 카에 남겨진 법의학적 증거들이 비상식적으로 훼손됐다는 점과 부검의들이 총상전문 법의학자가 아니었다는 점 등이었다. 공범이 있다는 설이 급속도로 번졌다.
오스왈드의 피살도 석연찮은 점이었다. 사건 직후 인근 빌딩에서 체포된 오스왈드는 범행 총기와 탄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대통령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틀 뒤 카운티 교도소로 이송하기 위해 댈러스 경찰서 지하실을 나와 무장 차량으로 옮겨지던 중 군중 속에 있던 나이트클럽 운영자 잭 루비의 총에 복부를 맞아 병원에서 숨졌다. 체포된 대통령 암살 용의자가 경찰 호송 도중 일반 시민의 총격에 숨지는 그 허술함을 대중은 수긍하지 못했다. 루비 역시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항소, 재판을 기다리다 67년 1월 폐암 합병증으로 숨졌다.
위원회는 두 달 뒤 증언기록 등 26권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 보충자료를 제출했다. 그 기록들은 곧장 국가기록물보관소로 옮겨졌고, 당시 법령에 따라 75년(2039년까지)간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됐다. 66년 정보자유법(FIA)이 시행되면서 공개 시기가 앞당겨졌으나 92년 ‘JFK 기록법’에 따라 위런위원회 자료는 98%만 공개되고 2%는 “관련자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25년을 더 묵히게 됐다. 25년 뒤가 내년 10월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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