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신청 기각 원칙적으로 금지
변론 종결 후에도 주장 보완 기회
항소심 접수 건수 매년 증가
소송비용ㆍ시간 아끼려는 취지
2012년 회사의 거래업체 선정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면직처분을 받은 A씨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며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에 면직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징계 자체가 부당하고 설령 징계 사유가 필요하더라도 면직처분은 지나치다는 주장이었다. 춘천지법은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2013년 7월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자 A씨는 항소심에서 새로운 주장을 폈다. A씨가 면직처분에 불복해 2012년 7월 개최된 재심 징계위원회에 의사정족수인 4명이 참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3명만 회의에 참석해 징계를 의결했다는 것이다. 항소심을 진행한 서울고법은 2014년 9월 징계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A씨에 대한 징계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A씨가 1심에서부터 의사정족수의 부족을 주장했다면 소송비용은 물론 1년 2개월여의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적으로 낭비되는 소송비용을 줄이기 위해 법원이 1심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소송을 지휘하고 변론을 종결한 뒤에도 새로운 쟁점이 제기되면 다시 변론기일을 열기로 하는 등 1심을 충실화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법(법원장 강형주)은 26일 민사 합의부 재판장 26명과 수도권 소재 지방법원의 민사 합의부 재판장 7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실심 심리방식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개선책을 내놨다. 그동안 1심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법원이 소송지휘권을 적극 활용하는 등 본격적으로 재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법원은 먼저 충실한 심리를 위해 사건 당사자들과 협의해 심리 계획을 세우고 쟁점을 정리하기로 했다. 당사자들과 소통을 늘려 재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도록 돕고,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재판절차에 참여하도록 해 소송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려는 취지다.
법원은 이와 함께 변론이 종결된 후 재판부가 ‘석명준비명령’을 발송해 미진한 주장을 보완할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한다. 1심이 종결된 후 새로운 쟁점이 나오면 이는 항소심에서 다투게 되는데, 1심에서 충분히 다투겠다는 것이다.
당초 청구취지에 반영되지 않은 쟁점이라도,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청구취지나 청구원인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다만 당사자가 직접 청구취지나 원인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양한다.
법원은 또 재판에 아쉬움이나 의문이 남지 않도록 1심 단계에서 증거를 폭넓게 채택하기로 했다. 당사자의 증거신청을 기각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증명할 사실과 관련이 있고 쟁점 판단에 필요하다면 현장검증과 감정 신청도 받아들일 계획이다. 1심 때 제출 가능한 모든 증거를 내도록 해 2심에서 새로이 다투는, 두 번의 1심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개선책은 전국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 접수되는 항소심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마련된 조치다. 법원에 따르면 2012년 접수된 항소심 건수는 5만3,235건이었지만 이듬해엔 5만6,177건, 2014년 5만7,717건, 지난해 5만8,422건까지 늘었다. 법원 관계자는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율이 높아지면 재판 당사자에게 1심보다 항소심에서 전력을 다해 다퉈야 한다는 인식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1심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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