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퇴위 잡음에 장관 경질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임시국회 개회와 함께 개헌논의를 본격 점화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생전퇴위 후속조치까지 겹치면서 일본정치권은 개헌 논란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중ㆍ참의원 연설에서 “헌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고 국민이다”며 “헌법개정 방안을 만들어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 국회의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 입장을 뛰어넘어 헌법심사위원회에서 논의를 심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코 사고정지에 빠져서는 안된다. 지혜를 모아 함께 미래를 향한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연설 대부분을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 조기 발효, 아베노믹스 가속, 1억 총활약사회 등에 할애한 뒤 맨 마지막에 개헌논의를 짧게 언급했다. 물론 아베 총리가 당장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 등 2012년 자민당 개헌초안을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민진당 등 야권이 평화헌법 9조 개정에는 강하게 반발하는 만큼 유연하게 개헌논의 물꼬부터 트는 전략으로 우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민진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간사장은 25일 NHK에 출연해 “자민당 초안은 국가존재방법을 바꾸는 내용이다. 철회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치권은 아베 총리의 우보(牛步)전술을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아베의 행보가 느리긴 하지만 결국은 개헌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 직후 당장 국회 내 헌법심사회는 회의를 열고 모리 에이스케(森英介)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을 의장으로 선임하는 등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정가에서는 아베가 야권의 반발이 적은 긴급사태조항 등을 우선 다뤄 개헌 논의 분위기를 띄운 다음 국내 여론 추이에 따라 평화헌법을 뜯어고치겠다는 단계적 개헌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개헌에 혼선을 줄 수 있는 일왕 생전퇴위 문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국민 여론을 고려해 전문가회의를 설치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길 바란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3월 인사 관례를 깨고 아베 총리는 이날 가자오카 노리유키(風岡典之) 궁내청 장관을 사실상 조기 경질했다. 생전퇴위 소식이 언론을 통해 먼저 나오는 등 궁내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다 향후 전문가회의 논의에 정부측 의도를 반영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지지(時事)통신의 해석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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