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네소타 더그아웃에 걸린 마이애미 호세 페르난데스의 유니폼. /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김지섭] 현재 마이애미의 에이스이자 향후 메이저리그 10년을 끌고 나갈 '영건' 투수 호세 페르난데스가 보트 사고로 사망했다. 세상을 떠난 나이는 이제 겨우 24세. 타고난 야구 재능으로 '꽃길'을 걸을 일만 남았는데 그의 걸음은 목숨을 걸고 헤쳐왔던 바다에서 멈췄다.
페르난데스는 25일 밤(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에서 타고 있던 보트가 방파제 바위에 부딪치는 사고로 숨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전복된 보트와 3명의 사망자를 발견했다. 현지 수사당국은 보트 사고의 원인을 과속으로 보고 있으며, 술이나 마약을 한 흔적은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1992년 쿠바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고, 16세였던 2008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앞선 3차례 망명 실패로 감옥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4번째 도전 끝에 성공했다.
망명 후 페르난데스는 고교 리그에서 노히트 노런을 두 차례나 달성하는 등 13승1패 평균자책점 2.35의 수준급 성적을 올리고 201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14순위로 마이애미 유니폼을 입었다. 2012년 마이너리그에서 시속 159㎞의 빠른 공을 앞세워 14승1패 평균자책점 1.75로 눈도장을 찍고 2013년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 해 4월8일 페르난데스는 뉴욕 메츠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러 5이닝 동안 삼진 8개를 곁들여 1실점으로 막는 호투를 했다. 승리는 따라오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보여주며 선발진에 안착했다. 그리고 12승6패 평균자책점 2.19의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당시 류현진(LA 다저스)과 신인왕 경쟁을 펼쳐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됐다.
페르난데스는 이후 부상과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로 2014년 4승(2패), 2015년 6승(1패)을 수확하는데 그쳤지만 올해 16승8패 평균자책점 2.86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별들의 잔치' 올스타전에는 이번 시즌까지 두 차례 출전했다. 한해 최고 활약을 펼친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만큼 눈부신 시즌을 보내고 있었지만 더 이상 페르난데스가 공을 뿌리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그의 마지막 등판은 지난 21일 워싱턴전(8이닝 무실점)이다. 페르난데스는 당초 25일 애틀랜타전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었지만 구단 코칭스태프가 체력 안배 차원에서 26일로 미루며 하루 휴식을 더 줬다.
리그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를 바다에서 잃은 메이저리그는 눈물바다를 이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6일 열릴 예정이던 마이애미-애틀랜타전을 취소했다. 돈 매팅리 마이애미 감독은 이날 전체 선수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페르난데스와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매팅리 감독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선수단은 기자회견 후 페르난데스의 어머니를 찾아가 위로를 건넸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데이빗 오티스(보스턴)는 이날 탬파베이와 원정 경기에서 비보를 듣고 은퇴 선물 전달 행사를 고사했다. 경기 전 페르난데스를 추모하는 묵념을 할 때 눈물을 훔친 오티스는 트위터에 "내 친구를 잃은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적었다. 이밖에 다른 선수들도 SNS에 추모의 글을 올리고, 더그아웃 한 켠에 페르난데스의 유니폼을 걸었다.
페르난데스의 사망 소식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내년에 태어날 아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최근 SNS에 "내년 1월 아버지가 된다. 약혼녀 카를라 멘도사가 내 아이를 가졌다"는 글을 올리며 기뻐했지만 아이의 모습은 먼 하늘나라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김지섭 기자 onio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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