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ㆍ기업인 등 위원회 참여
민간 전문가들도 적용 대상
부담 느껴 공무활동 기피 현상
民官 업무 협력 공백ㆍ차질 우려
공무수행 기준도 불분명해 혼선
공공업무 많은 은행원 90% 해당
경제단체 임원 자격으로 정부 위원회 위원 자리를 몇 개 겸임하는 A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민간인인 그가 정부 위원회에 몸담으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될 것이란 얘기 때문이다. 그는 김영란법 대상이 되면 사람을 만나거나 경제단체 업무를 하는 것에 제약이 클 것을 우려해, 위원회를 그만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28일부터 효력을 발휘하는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민간인 신분임에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공무수행 사인(私人)’들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김영란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공무수행’을 그만두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데다, 정확한 대상을 두고도 아직 혼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칫 민관(民官) 간 업무 협력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영란법은 주로 공무원ㆍ언론인ㆍ교직원 및 그 배우자가 적용 대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업무와 관련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의무는 상당수 민간인에게도 적용된다. 이렇게 공직자가 아니면서도 공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을 공무수행 사인이라고 하는데 ▦각종 법령에 따라 설치된 위원회의 민간위원 ▦권한을 위임ㆍ위탁받은 법인ㆍ단체 및 개인 ▦공무 수행을 위해 파견된 민간인 ▦법령에 따라 공무상 심의ㆍ평가 등을 하는 민간 전문가 등이 포함된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 공공사업과 관련한 설계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는 건축사는 해당 공공사업에 참여하는 건설사 직원에게 선물을 받을 수 없고, 금융당국에 파견된 민간은행 직원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금융회사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받으면 안 되는 식이다.
문제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이들의 이탈이 적잖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해 온 검찰 출신 변호사 B씨는 앞으로 공공 분야 위원 활동은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B씨는 “괜히 자문위원 활동을 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어 차라리 무료 법률활동을 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정책 분야 자문을 하는 교수 C씨도 최근 해당 부처에 사의를 전했다. 교통비 정도만 받는 상황에서, 굳이 법 규제를 받으며 위원회에 남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C교수는 “그나마 정부에 의료계의 입장과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였는데, 이런 창구가 점점 없어지게 되면 그야말로 탁상 행정이 판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공무수행 사인에 대한 기준도 불명확하다. 최근 은행연합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은행 업무 중 어디까지가 공무수행에 해당하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은행원은 민간인이지만 주택청약, 전세대출, 지방자치단체 금고 관리 등 15개 유형의 공공업무를 담당한다. 한 은행 준법감시인은 “법을 민간은행에 그대로 적용하면 전체 직원 90% 가까이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며 “권익위가 답변을 주지 않아 일단 15개 업무 담당자를 모두 공무수행 사인으로 간주하고 준비하고 있지만 혼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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