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하면 샘표를 떠올릴 정도로 샘표식품을 장수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박승복(사진) 샘표식품 회장이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샘표식품 창업주 고(故) 박규회 회장의 장남인 고인은 공직생활을 하다 1976년 55세 때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했다. 박 회장은 앞서 한국식산은행(한국산업은행 전신)에서 25년을 근무하고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특히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당시 주민등록번호 제도 도입과 소양강댐 준공, 세종문화회관 설립, 한국민속촌 민자유치 건립 승인 등의 업적을 남겼다.
‘내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품질’에 최우선을 둔 경영에 힘썼다. 87년에는 당시 단일품목 설비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간장 공장을 지었다. 오늘날 샘표의 기반을 다진 셈이다. 85년 한 방송에서 불법으로 간장을 만들어 파는 현장이 방영되면서 샘표 간장에 대한 오해가 생기자 박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로는 처음으로 광고에 직접 출연해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달력 뒷면과 이면지를 버리지 않고 메모지로 이용했다. 자신이 타던 10년 된 자동차를 장남인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에게 물려줘 40만㎞를 타고서야 바꿨을 정도다. 또 하루 세 번 식후 식초를 마시는 습관 때문에 ‘식초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 회장은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식초를 활용할 수 있도록 흑초음료 ‘백년동안’을 개발하기도 했다.
40년 넘게 경영 일선에 있었던 그는 중소기업을 벗어난 중견기업들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설립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도 23년간이나 지냈다.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목련장ㆍ모란장,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한국의 경영자상 등을 받았다.
샘표 관계자는 “고인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분기마다 모든 직원 앞에서 회사 경영 현황을 설명했다”며 “노조 설립까지 먼저 권유할 정도로 직원 사랑이 각별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경조사를 직접 챙기고, 아픈 직원을 직접 병문안 하면서 쌓은 신뢰가 바탕이 돼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가 없었다는 게 샘표 측 전언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7시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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