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박정환 9단
흑 이세돌 9단
<장면 15> 앞 장면에서 이세돌이 ▲와 △를 교환한 다음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동안 관전자들 사이에서는 “내친 김에 오른쪽 백 대마를 몽땅 다 잡는 수를 연구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슬그머니 한 발 물러서서 1로 자기 말부터 확실히 연결했다. 일단 ‘아생(我生)’부터 한 다음 ‘살타(殺他)’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백이 빨리 한 수 더 둬서 대마를 살려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흑이 상변을 돌파해서 어차피 백이 바둑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박정환이 중대 결단을 내렸다. 먼저 우상귀로 손을 돌려 4, 6을 선수한 다음 8로 상변부터 지켰다. 흑이 <참고도> 1로 젖혀서 백 대마를 잡으러 오면 백도 2, 4로 흑을 차단한 다음 귀에서 6, 8로 움직여서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뜻이다. 이 싸움은 오히려 흑이 더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이세돌이 괜히 무리하지 않고 9부터 21까지 가장 온건하고 알기 쉽게 반면을 정리하는 길을 택했다. 백이 A로 받으면 상변 22의 곳을 밀고 들어가 흑 한 점을 연결해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만일 그렇게 진행된다면 흑이 무난히 덤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뻔히 지는 길이 눈에 보이는데 고분고분 상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프로기사는 한 명도 없다. 이 장면에서 박정환이 당연히 한 번 더 버텼다. 상변을 지키지 않고 과감히 손을 빼서 먼저 우상귀쪽을 22로 막은 게 마지막 승부수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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