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
대기업들로부터 출연금을 모으는 등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 설립에 깊숙이 관여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선임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의 교체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800억원에 가까운 출연금을 일사천리로 낸 배경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부회장은 23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두 재단을) 지금 상태로 유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부회장은 두 재단 설립과 관련해 청와대와 최태민 목사의 딸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 개입 의혹 등이 불거지자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문화ㆍ스포츠 사업을 해보자는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가 낸 아이디어로 재단이 설립됐으며, 모금도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명해 왔다.
이 부회장은 “어떤 해명을 하더라도 국민들이 납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금을 출연한 기업들의 의견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모두가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K스포츠재단의 2대 이사장인 정동춘씨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강남에서 스포츠마사지센터인 ‘CRC 운동기능회복센터’를 운영한 정 이사장은 ‘스포츠를 통한 창조경제 기여’라는 K스포츠재단 설립 취지와 동떨어진 이력 때문에 이사장 취임 때부터 논란이 됐고, 최씨가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문화재단 미르의 경우 사업 성과가 없고, 조직 내부적으로 알력이 심해 이미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다수가 교체됐다”며 “비슷한 상황인 K스포츠재단도 운영 상황을 점검한 뒤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단 운영에 관여하는 실세가 있다면 이사진 교체 등에 대해 제동을 걸거나 외압을 행사해야 할 텐데 아직까지 어떤 연락도 받은 게 없다”며 “최씨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단 설립 과정의 각종 의혹과 이후 부실한 운영 등을 감안할 때 기업들이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자발적으로 출연한 배경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은 창조경제혁신센터, 청년희망펀드 등 정부의 주요 시책 사업에 거액의 기금과 예산을 투입했고, 이 때마다 일각에선 전경련 주도로 강제할당식 모금이 이뤄진다는 불만이 제기된 바 있다. 이와 관련 대기업들이 ‘보험용’으로 출연금을 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형적인 권력과 자본의 결탁’이란 비판도 없잖다.
이 부회장이 뒤늦게 해명을 한 시점도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냔 의심을 갖게 한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확인되지 않은 폭로”라고 규정한 뒤 해명에 나섰다.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이 단 하루 만에 허가가 난 것에 대해서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남는다. 2008년 이후 사단ㆍ재단법인 설립 신청 하루만에 문화체육관광부 허가를 받은 곳은 전체 149곳 가운데 단 6곳에 불과하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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