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찬성’ 160표로 압도적 통과
여당, 심야까지 대정부질문 지연
자정 넘기자 정 의장 표결 선언
새누리 의원들은 반발 후 퇴장
국감 앞 여소야대 갈등 불보듯
국회가 23일 여야 대치 끝에 자정을 넘겨 본회의 차수를 변경하는 우여곡절 끝에 3야당과 무소속 의원들만 참여한 가운데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의원 160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과반(151명) 찬성으로 가결된 것은 2003년 참여정부 때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안 이후 13년 만이다. 국회는 역대 5차례 해임안을 통과시켰으며, 해당 장관들은 모두 사임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김 장관 해임안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여당이 ‘날치기 통과’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정국이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여야가 미르ㆍK스포츠 재단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을 놓고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고, 다음주(26일) 시작될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선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한 문제로 다시 격돌할 것으로 보여, 가을 정치 일정 전체가 파행을 빚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야는 23일 김 장관 해임안 표결을 둘러싸고 강대 강으로 대치했다. 교육ㆍ사회ㆍ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위한 본회의는 오전 10시 개최 예정이었지만 새누리당이 의원 총회 지연책을 쓰면서 오후 2시30분 야당 단독으로 열렸다. 하지만 뒤늦게 참여한 새누리당이 사상 초유의 ‘국무위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동원하면서 질문이 자정까지 이어졌다. 국무위원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짧게 질문하면 총리와 장관은 길게 답변해 시간을 끄는 방식이다. 정우택 의원의 15분 질의에, 황교안 국무총리 등은 무려 40분간 답변을 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오후 8시께 ‘국무위원 식사시간을 줘야 한다’며 정세균 국회의장과 36분간 대치, 결국 저녁을 먹기 위한 정회가 이뤄지기도 했다.
대정부질문 뒤 처리할 계획이던 해임안 처리 역시 차질을 빚었다. 오후 10시20분에 대정부 질문 마지막 주자로 나선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이 자정 직전까지 마치지 못하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자정이 가까워졌는데 오늘 예정된 일정을 처리하기에 시간이 부족해졌다”며 차수변경을 선언했다.
이에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는 “정 의장이 직권으로 날치기해 의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여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정 의장에게 항의하면서 본회의장은 약 30분 동안 큰 소동이 벌어졌다.
박완주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가 해임안을 제안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 나갔고, 이어 무기명 투표가 진행됐다. 더민주(121명)ㆍ국민의당(38명)ㆍ정의당(6명) 전원이 참여했고, 무소속은 정세균 의장을 포함한 5명 등 모두 170명이 투표했다. 새누리당 의원 129명과 무소속 홍의락 의원은 투표하지 않았다. 개표 결과 찬성 160, 반대 7, 무효 3으로 해임안은 최종 가결됐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해임안에 대해 청와대는 수용할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도 의원 총회에서 “정치 흥정이 되지 않으니까 야당이 힘 자랑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민경욱 의원은 “해소된 의혹을 근거로 한 해임안은 과도한 정치공세”라고 말했다.
김재수 장관 해임안 갈등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여야의 전초전 성격이 강하고, 진짜 화약고는 아직 터지지 않은 상태다.
야권은 미르ㆍK스포츠 재단 의혹, 특히 ‘비선실세’로 의혹이 제기된 최순실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개입 여부 등을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더민주 우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해당 부처, 관계 기관이 의혹에 대한 해명 의지가 없어, 당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비대위원ㆍ중진위원 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이 아무 문제 없다고 하신다면 우리 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으로 밝히면 그만”이라며 “증거를 대라고 하지만 수사를 해야 증거가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며, 관련 단체와 관련된 인사들의 국감증인 채택에 반대하고 있다.
여야는 수 개월째 대치를 이어온 4ㆍ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한 연장을 놓고도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야권은 선체 인양 이후 특조위가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활동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여당은 법이 보장한 활동 기한이 지났다며 반대하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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