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뒤집어쓴 ‘옴란’ 본 뒤
美 6세 아이가 쓴 편지 감동
‘난민 거부’ 서구사회에 경종
“오바마 대통령께. 시리아에서 앰뷸런스에 앉아 있던 남자 아이를 기억하세요?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와 줄 수 있나요?”
미국 뉴욕 스카스데일에 사는 알렉스(6)는 지난달 말 온몸에 재와 먼지를 뒤집어쓴 또래 시리아 소년의 사진을 보고 펜을 들었다. 알렉스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이를 데려와 준다면 우리 가족이 깃발과 꽃다발, 풍선을 가지고 기다릴게요. 우리는 옴란의 가족이 돼 줄 거예요”라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보낼 편지를 적었다. 시리아 알레포 폭격 현장에서 멍한 표정을 한 채 앰뷸런스에 앉아있는 사진으로 내전의 참상을 알린 옴란 다크니시(5)의 모습이 6살 알렉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알렉스의 정성 어린 손 편지는 한 달 후인 1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난민정상회의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목소리로 재탄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알렉스의 편지를 낭독한 뒤 “냉소와 의심, 두려움을 배운 적 없는 한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인간애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고 밝혔다. 백악관 홈페이지와 오바마 대통령의 페이스북 계정에 게재된 알렉스의 동영상은 25만 회 이상 공유, 1,400만번 넘는 시청 회수를 기록하며 감동을 주고 있다.
알렉스의 편지 중 옴란과 나누고자 한 일상을 적은 내용은 난민 거부 목소리를 높이는 서구 사회에 반성의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알렉스는 “옴란은 장난감을 갖고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제 동생 캐서린은 자기의 커다란 줄무늬 토끼 인형, 저는 자전거를 빌려주려고 해요”라고 적었다. 알렉스는 “학교에 시리아에서 온 오마르라는 친구가 있는데 오마르에게 옴란을 소개해주고 모두 함께 놀 거에요”라면서 제법 의젓한 방안도 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알렉스와 옴란의 사연을 알리면서 시리아 내전의 참상 또한 재조명 받고 있다. 현재까지 50만명에 가까운 시리아 내전 희생자 가운데 15세 미만 어린이 비중은 20%에 달한다. 430만명의 시리아 난민 중에서도 어린이 수는 절반을 차지한다. 미국은 올해 1만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였으나, 최근 영국계 구호단체 옥스팜에 따르면 미ㆍ중ㆍ일 등 국내총생산(GDP) 기준 상위 6개국의 난민 수용 규모는 전체 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난민정상회의를 마치며 50개국이 난민 36만명을 추가 수용하기로 결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와 함께 “난민 가족들의 면전에서 문을 닫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배반하는 것”이라며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난민들을 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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