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장관 해임안’ 가결]
새누리 ‘김재수 구하기’ 시간끌기
정 의장 최후통첩에 본회의 참여
정우택은 대정부질문에 55분 써
야당 “초유의 국무위원 필리버스터”
정진석 등 30여명 발언대 앞 항의
표결 못 막자 퇴장 “협치 끝났다”
새누리당은 23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의 국회 처리를 막기 위해 각양각색의 지연작전을 펴는 데 총력을 쏟았지만 여소야대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24일 0시까지 버텼지만, 정세균 국회의장이 차수변경 후 해임건의안을 상정하자 속수무책이었다. 새누리당은 발언대를 일시 점거하며 항의했지만 표결을 막지는 못했다.
밤 12시까지 비상대기령을 발령한 새누리당은 초반에는 오전 10시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을 지연시키는 작전을 폈다. 본회의를 앞두고 오전 9시 소집된 의원총회를 오후 3시까지 끄는 방식이었다. 이 바람에 본회의 개의 시간도 10시에서 10시 30분 그리고 오후 2시로 연거푸 연기됐다.
그 사이 새누리당 의총에선 야당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김상훈 의원은 “국론분열의 DNA(유전자)를 가진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준동이 금도를 벗어났다”며 “김종인 대표의 존재감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유민봉 의원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한 연장을 3루에, 어버이연합 청문회를 2루에 놓고 해임건의안으로 외야플라이라도 날리겠다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3당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으나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오후 2시 본회의를 우선 개회한 정 의장은 30여분간 새누리당 의원들의 참석을 기다리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해임건의안을 상정해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대정부질문을 강행했다. 정 의장의 최후통첩에 비공개 의총을 진행 중이던 새누리당은 “야당이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데 우리가 뭐 힘이 있냐”며 뒤늦게 본회의 참여를 결정했다.
본회의장으로 돌아온 새누리당이 선택한 카드는 본회의에서 답변시간 제한이 없는 국무위원을 통한 사실상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였다. 국회법상 대정부질문에서 질문자의 발언 시간은 15분으로 제한되지만,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의 발언 시간은 제한이 없다는 점을 활용했다. 새누리당의 첫 질문자인 정우택 의원은 대정부질문 평균 질의시간의 2배에 가까운 무려 55분간 질문했다. 마지막 질문자로 나선 이우현 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면서도 통합진보당 해산(황교안 국무총리), 정부 3.0(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자유학기제(이준식 교육부 장관) 등 기본 정책 현안을 물으며 2시간 가까이 대정부질문을 이어갔다.
해임건의안은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안에 표결에 부쳐져야 하고, 시한을 넘기면 자동폐기 된다.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전날 오전 10시 3분 국회에 보고된 만큼 25일 오전 10시3분까지 본회의 표결을 저지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 국무위원들에게 발언 시간을 늘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해임건의안 표결을 무산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 의장은 24일 0시를 넘기자 “국무위원의 출석일은 어제 12시로 끝났다. 돌아가셔도 좋다”며 대정부질문을 종료시키고 해임건의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차수변경을 알렸다. 정진석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의원 30여명이 발언대로 몰려나와 “비겁한 날치기다”, “민주주의 파괴한 정세균은 물러나라”고 항의하면서 본회의장이 순간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대정부질문도 국무위원 식사시간 보장 문제로 파행을 겪기도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오후 7시 50분쯤 “김밥 먹을 시간이라도 달라”며 정회를 요구한 데 대해 정세균 의장이 “회의가 늦어진 게 누구 때문이냐”며 거부한 게 발단이 됐다. 정 원내대표가 “의회 독재”라며 본회의장 단상에 서자, 정 의장은 “국무위원들이 답변을 (의도적으로) 길게 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았냐”며 맞불을 놨다. 야당 의석에선 “필리밥스터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식사 시간을 핑계로 필리버스터를 시도한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여야 의원들 사이에 삿대질과 고성이 섞인 설전이 36분이나 이어진 끝에 대정부질문이 정회됐다가 오후 9시 속개됐다.
앞서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마지막에 등장했던 필리버스터로 해임건의안 처리를 무산시키는 방안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회의 개의 전까지 새누리당이 무제한 토론 신청서를 내지 않으면서 국회법 규정에 막혀 무산됐다.
더민주는 이날 3차례나 의총을 열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소속 의원 총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조를 나눠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본회의장을 지키는 등 이탈표 방지에 만전을 기했다.
전날 해임건의안 야3당 공동발의에 불참하면서 “새누리당 2중대냐”는 반발 여론에 직면했던 국민의당은 표결 참여 여부를 결정할 의총 개최를 계속 연기하면서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우리가 저러다(새누리당처럼 하다) 야당이 됐다”면서도 “제가 기상청장이 아니라 정확하게 예보할 수가 없다”고 마지막까지 연막을 피웠다. 국민의당은 해임건의안 표결이 임박해 비공개 의총을 열고 자유투표 방침을 유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소속 의원 전원을 국회에 대기시키는 등 표결에 대비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