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 前총장에 또다시 백기
징계 적법성 주장커녕 거꾸로
대법에 “해임 위법성 판단을”
1ㆍ2심서도 변론 포기로 패소
김 전 총장 측근 장악 이사회
교육부 요구로 마지못해 대응
대학 비대위, 배임 고발 추진
“노골적으로 감독 당국 우롱”
원주 상지대 학교법인인 상지학원이 교육부 요구로 해임한 김문기(84) 전 총장과의 소송전(戰)에서 또다시 백기를 들었다. 항소심 판결을 수긍하지 못할 때 대법원에 재심을 청할 수 있게 한 상고제를 비웃으면서다. 감독 당국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2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상지학원의 상고 이유서를 보면, 상지학원은 올 6월 서울고법 춘천 제1민사부가 내린 징계 처분 무효 확인 소송 항소심 원고 승소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징계 처분의 실체적ㆍ절차적 하자에 대해 위법성을 적절히 판단해 주기 바란다”고 대법원 3부에 최근 요청했다. 처분 당사자가 소송비를 써가며 기껏 상고해 놓고는 패소 판결을 뒤집기 위해 처분의 적법성을 강조하기는커녕 제 행위의 흠을 재차 언급하며 사실상 변론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상지학원의 납득하기 힘든 행태는 처음이 아니다. 애초 제기된 것은 ‘위장 해임’ 의혹이었다. 교육부는 작년 3월 상지대를 대상으로 종합감사를 벌인 뒤 상지학원에 김 전 총장 해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학원은 같은 해 5, 6월 김 전 총장에게 각각 1, 2개월의 정직 처분만을 내리며 버텼다. 학원 이사회가 김 전 총장 해임을 의결한 것은 교육부가 시정을 요구하며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이사 취임 승인을 취소하겠다고 경고한 직후인 그 해 7월이었다.
문제는 이사회가 별도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고 덜컥 총장 해임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수와 학생ㆍ직원들이 꾸린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사회가 김 전 총장에게 소송의 빌미를 주려고 일부러 절차를 누락했다”고 주장했고 실제 해임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에서는 무(無)변론 논란이 불거졌다. 작년 11월 춘천지법 원주지원 제1민사부는 김 전 총장이 같은 해 8월 상지학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해임 처분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 상지학원이 쟁점을 다루는 답변서를 30일 동안 제출하지 않는 등 무변론으로 일관한 점을 감안해 원고인 김 전 총장의 주장들을 전부 인정한 것으로 판단했다. 2심 때도 상지학원은 패소를 자초했다. 판결에 앞서 올 3월 학원은 ‘청구인인 김 전 총장의 주장을 인정하고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뜻의 ‘청구인낙(請求認諾)’ 의견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내어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고, 법원은 원심과 같이 원고 승소를 선고했다.
이처럼 상지학원이 김 전 총장을 비호하는 것은 이사회를 김 전 총장 측근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지학원은 1993년 부정 입학 간여 등 비리로 김 전 총장이 이사장 직에서 물러난 뒤 17년 간 교육부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2010년 교육부 소속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구(舊)재단 복귀 허용 뒤 약 4년 만에 김 전 총장 측근들로 이사회가 채워졌다. 학원이 7월 대법원에 상고 접수를 신청한 것도 교육부 요구로 마지못해서였다는 게 중론이다.
상지학원 이사회의 잇단 변론 포기는 교육부의 해임 요구에 대한 불응으로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사유가 된다는 것이 상지대 비대위 측 주장이다. 방정균 상지대 한의대 교수는 “김 전 총장과 상지학원의 담합에 의한 희대의 사기 재판이 용인될 경우 교육부 징계가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작 교육부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상연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장은 “상고 권유는 김 전 총장 복귀를 지연시키려는 목적이었고 승소를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승인 취소는 판결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지대 비대위는 일단 학원 이사회를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기려는 의지도 없이 비용이 들어가는 소송을 벌여 학교법인에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다는 판단에서다. 이광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상지학원이 교육부 요구에 불만이 있었다면 애초 논리를 갖춰 거부부터 했어야 하고 소송에서는 해임 처분을 한 당사자로서 해임이 적법하다는 대응을 마땅히 했어야 하는데도, 항소심 청구인낙 등으로 수임료 상당의 손해를 상지학원에 입혔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할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당국의 감독권 발령에 대해 피감기관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우롱한 선례가 없다”며 “국가기관이 공적 취지로 행사한 권한을 상지학원 이사회가 농락한 만큼 교육부가 승인 취소권을 발동하도록 국회가 압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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