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이 ‘연기 귀신’들이라 겁을 많이 먹었어요.”
황정민 정우성 곽도원 정만식.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하다. 한국 영화계에서 ‘난다 긴다’하는 배우들이 집합했다.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8) 등 수컷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영화를 주로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아수라’(28일 개봉)는 크랭크인 전부터 호화 캐스팅으로 시선을 끌어 모았다.
40대 이상의 관록 있는 연기자들 앞에 후배 주지훈(34)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전야’(2013)와 ‘좋은 친구들’(2014) 등으로 또래 배우들과의 연기가 익숙했던 터라 “형님들”과의 만남이 두려웠을 만하다.
2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훈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촬영 들어가기 전 그들이 가진 커리어가 무서웠다”며 선배들의 면면에 주눅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사람이 무섭더라고요.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더 무서웠던 거 같아요. 떨리더군요. 그간 (연기의 두려움을) 잠깐 잊고 있었어요.”
두려움 속에서도 연기는 해야 했다. 황정민 정우성 등이 주지훈이 맡은 역할에 관심을 갖고 용기를 줬다. 주지훈은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친동생 같은 후배 형사 문선모로 나온다. 도경은 온갖 비리와 범죄를 저지르는 중소도시 안남의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뒷일을 봐주는 인물. 도경이 선모를 성배의 수하로 들여보내면서 둘의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생기고 결국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주지훈은 도경을 잘 따르는 후배에서, 성배의 편에 서서 도경에게 멸시의 시선을 보내는, 극 중 가장 변화무쌍한 역할을 맡았다. “형들이 연기 귀신들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는 주지훈은 “형들도 걱정이 됐는지 내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며 ‘나이만 어렸다면 네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말로 위로도 하더라”고 말했다. “형들은 ‘(문선모가)변해가는 과정을 잘 잡아 연기하면 네 역할이 가장 좋다’는 말도 했다. 그게 말이 쉽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알려주지 않더라(웃음)”고 했다.
‘아수라’를 촬영하는 내내 주지훈은 “형들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선배’라는 말 대신 “형들”이라고 강조했다. 악행만이 남은 가상의 도시 안남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싸움이 영화의 8할을 차지한다. 배우들간의 스킨십이 잦을 수 밖에 없었고 우정은 돈독해졌다.
그래서일까. “형들”을 위하는 주지훈의 마음은 각별하다. “(정)우성이 형은 선하게 타고난 사람이에요. 사람 자체가 너무 좋죠. (황)정민이 형은 연기할 때 약간 무서워요. 저 역시 같이 연기를 하면서도 그의 연기에 홀려서 볼 정도죠. 그러다 제 대사를 잊어버리기도 했어요. 저도 그런 연기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형님들을 향한 마음은 끝이 없다. “(곽)도원이 형은 술을 마시면 잘 우세요(웃음). 웃음 소리는 또 얼마나 큰데요. 극단활동을 오래하셔서 그런지 제 (귀의) 달팽이관이 힘들 정도예요. (정)만식이 형은 그들 중 가장 덜 웃겨요. 개그가 한 단계 떨어진 달까요? 하하.”
주지훈이 ‘아수라’에선 막내라고 하나 그도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MBC 드라마 ‘궁’(2006)으로 데뷔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자기 확신이 좀 줄어든다”고 했다. 남에게 함부로 하는 누군가를 보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다가도 “나 역시 누군가에게 저러겠지?”하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다고. “타인을 배려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우리 모두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한창 촬영 중인 영화 ‘신과 함께’를 통해 그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단다. 하정우 차태현 이정재 마동석 등이 함께 하는 영화다. 저승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신과 함께’는 와이어를 이용한 공중 촬영 분량이 많아 배우들이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하)정우 형은 ‘이거 이거 난감하네. 그래도 지훈아, 우리 한 번 다시 시도해볼까?’라며 재미있게 넘어가곤 해요. 현장에서 힘든 상황을 형님들의 노하우로 이겨내고 있는 거죠. 서로 기분 좋게 험난한 과정을 헤쳐나가면서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주지훈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영화계 형님들의 얼굴이 떠올라서인 게다. 주지훈은‘브로맨스’ 가득한 영화들을 만나며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해가고 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도 즐거울 듯하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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