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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마타 하리 무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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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마타 하리 무죄 선언’

입력
2016.09.2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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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을 맞는 파울로 코엘료. 한국일보 자료사진
데뷔 30주년을 맞는 파울로 코엘료.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오진영 옮김

문학동네 발행·224쪽·1만2,500원

파울로 코엘료 신작소설 ‘스파이’를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마타 하리(1876-1917)에 대해 거의 몰라야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첩자 혐의로 처형된 뇌쇄적 미모의 팜므파탈’까지 알고 있다면, 이미 재미는 반감된다. ‘무모한 전쟁으로 죽어가는 젊은이들과 정·관계 고위층의 선정적 스캔들을 덮기 위해 날조된 희생양’이라는 역사적 평가까지 알고 있다면, 이 책에서 새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1인칭 편지체 서술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소설이 아니라 전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책으로, 영화로, 뮤지컬로 익히 알려진 이 이야기가 데뷔 30주년을 맞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에 의해 반복됐을 때, 과연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해 볼 만하다.

소설은 1917년 10월, 눈가리개를 거부하며 당당하게 제 발로 걸어나가 프랑스군에 의해 총살되는 마타 하리의 사형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면 요청 거절로 사형이 집행될 경우에 대비해 마타 하리는 훗날 딸에게 전달해 달라며 변호사에게 편지를 쓰고, 1인칭 시점으로 구술되는 생애가 소설의 주요 서사를 이룬다. 고로 소설은 마타 하리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스스로 발화한 바 없는 존재였던 역사적 타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며 작가는 이 억울한 여인의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지만, 그 침투의 깊이가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니어서 ‘이미 알고 있지만 독자를 뒤흔드는 내면의 강렬함’ 같은 것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주체적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많이 써온 작가답게 코엘료는 ‘스파이’의 서두에 분명하게 소설의 주제를 밝히고 들어간다. “나의 가장 큰 죄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름다운 소녀 마르하레타 젤러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파산과 병사로 간난한 삶을 살게 된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파견 나가 있던 나이든 대위의 신부 모집 신문광고를 보고 편지와 사진을 보낸 것은 불운한 삶에 작별을 고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인도네시아 자바에서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폭력과 외도, 의부증으로 지옥 같았다. 자살하겠다는 위협을 앞세워 파리로 떠난 그녀는 스트립쇼에 가까운 동양의 이국적 무용을 선보이며 유럽 사교계를 사로잡는 무희가 되고, 이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무희답게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를 뜻하는 마타 하리로 아예 이름을 바꾼다.

“창녀라면 맞아요. 스파이는 절대 아닙니다!” 자유를 향한 탈출에 미모와 섹스를 이용했고,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배신과 거짓말을 일삼기는 했지만, “고양이 한 마리 벌줄 만큼도” 국가에 죄를 짓지는 않았다. 그저 아름답고 매혹적이어서 수많은 고위층 남자들이 그녀에게 몰려들었을 뿐이다. 역시 스파이 혐의를 받았던 드레퓌스는 에밀 졸라를 위시한 지식계가 들고 일어나 형 집행을 막았지만, 마타 하리를 위해서는 “아무도 연판장을 돌리거나 대중시위를 벌이지 않았다.”

변호사의 답장으로 이뤄지는 소설의 3부는 법정에서의 변론으로는 실패했지만, 역사의 기록으로는 남겨야 할 마타 하리에 대한 무죄 선언이다. “여자라는 죄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죄로, 대중 앞에서 옷을 벗었다는 막중한 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평판을 유지해야 하는 남자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위험한 죄로, 당신은 부당하게 희생되었습니다.” 마타 하리가 “독일인들에게 우리 군인들의 머리를 갖다 바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이 시대의 살로메”로 매도되며 용서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도덕적 관습에 겁 없이 저항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변호사의 입을 빈 코엘료의 주장이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와 프로이트가 작중 인물로 등장하는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한 파리에서 가장 여운을 남기는 발화의 주인공은 발칸반도의 집시여인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전쟁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전쟁. “모든 전쟁은 죽음이라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치르고, 많은 이들이 이윤을 남기고서 끝나요.”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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