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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고생할 바에는 가족과 함께

입력
2016.09.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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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가 추석이었다. 추석 연휴와 주말이 이어져 5일간 쉴 수 있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출퇴근 안 한 한국 사람들에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겁고 복된 명절이 됐을 거로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들은 송편이나 부침 등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무척 바빴을 것이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나서 몸살이 나거나 마음고생을 한 며느리와 어머니들도 있었을 것이다.

21세기인 아직도 한국은 유교사상과 전통적인 풍습을 따르는 가족이 많아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가사부담이 훨씬 적고 언제든지 잘 노는 프랑스 여성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여성들은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도 주로 부엌일을 하게 되니 조금은 안 돼 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한국 가족에 시집 온 1980년대와 비교하면, 지켜야 할 예절도 간소화됐고, 점점 더 많은 노인이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한국 여성도 그때에 비해 많이 개방적으로 바뀐 것 같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다는 걸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요즘 젊은 기혼 남성들은 아이를 돌봐주거나 설거지 정도의 집안일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내가 한국에 시집 왔을 때만 해도 늘 엄마나 할머니, 이모나 고모 아니면 언니나 누나들이 어린애를 업은 채 부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명절 때 계속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여성들은 쉬지 않고 음식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한 관습 덕분에 명절 때마다 나는 다양한 요리를 배우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외국 여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한국 전통요리를 제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설날이나 추석을 편안하게 보냈다. 과일을 깎는 일조차 맡기지 않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먹기만 했다. 한복을 차려 입고 손님에게 술과 음식으로 가득 찬 그릇을 나르는 것만 도왔을 뿐이다.

올해 추석도 편안하게 보냈다. 그보다 추석 직전에 있었던 손주 백일 준비에 더 신경을 썼다. 사돈 댁에서는 추석 준비하느라 손주 백일잔치를 크게 신경 쓰지 못했는데, 외가 덕분에 외손자 백일이 성대하게 준비돼 고맙다는 얘기를 듣기까지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문화 가정이 한국 풍습을 보호하고 후세로 전달해 가는 데 더 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주로 구경만 해온 한국 전통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살고 프랑스에서도 사는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 프랑스 문화와 한국 문화 둘을 모두 중요시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내 눈에는 두 나라 문화에는 각자의 매력적인 면이 있고 한꺼번에 두 문화를 받아들이면, 삶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두 배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추석 연휴는 올해보다 더 길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휴가 하루만 내면 10일간 쉴 수 있단다. 그러면 더 즐겁고 신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부엌일로 과로하거나, 가족들의 의견이나 성격 차로 인해 마음고생 하게 되더라도, 함께 모일 수 있다면 가족을 위해 조금 희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살아 가는 것이 힘들다고 점점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지만, 과연 혼자 사는 것이 더 편안할까. 한국에서 일인 가족이 벌써 전체 가족의 28%나 되는데, 혼자서 사니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혼자 살면 명절 때 고생 안 해도 되니 좋을 것 같겠지만, 혼자서 살다 보면 외로움이 그만큼 커진다. 외로움에 괴로워하기보다는 같이 어울려 살면서 고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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