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열의 과학책 읽기] 조진호 '게놈 익스프레스'

게놈 익스프레스
조진호 글ㆍ그림
위즈덤하우스 발행ㆍ424쪽ㆍ2만1,000원

저자 조진호는 2012년 중력을 탐구한 ‘어메이징 그래비티’를 내놓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현직 교사이자 교양 과학 만화 작가다. 학부 전공이 생물교육학임에도 물리학 관련 주제를 먼저 다루고 4년 후에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책을 내놓은 것이니 이 책이 저자의 ‘회심의 역작’임을 짐작케 한다.

생명이란 무엇이며, 생명에게만 독특한 유전 현상을 매개하는 물질로 생각되는 소위 ‘유전자’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던 역사 속 주요 과학자 26명이 만화 캐릭터로 등장한다(책 뒷편에 그들의 이력서를 소개해뒀다). 현대 유전학의 창시자 그레고어 멘델은 완두콩을 이용한 7년의 실험을 정리하여 1865년에서 66년 사이에 유전 법칙을 발표했다. 19세기의 생물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배우자의 생식세포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정을 통해서만 유전형질이 유전된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수정란 가운데 어느 부분이 유전형질을 전달하는데 관여할까? 미국의 유전학자 토머스 모건은 초파리를 재료로 연구한 끝에 유전자가 세포 내 핵 안에 있는 염색체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했다. 더 나아가 그는 각각의 유전자는 염색체 위의 일정한 위치에 있으며, 대립 유전자는 각각 상동염색체 위의 동일한 위치에 존재한다는 유전자설을 발표하였다.

염색체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걸까? 쉽지 않은 이 질문의 돌파구는 의외의 인물에게서 찾아진다.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양자역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르빈 슈뢰딩거는 1943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3회에 걸친 강연을 하는데, 여기서 그는 생명 현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전자는 ‘분자’ 혹은 ‘비주기적 결정’이며, 그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양자물리학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이 견해는 생물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에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분자생물학이 출현하고 DNA 이중나선의 구조가 발견되는 극적인 드라마 말이다. 가장 근접했지만 불운했던 라이너스 폴링과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있었기에 크릭과 왓슨이 유전자 복제 메커니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랜시스 크릭은 DNA 주형으로부터 RNA가 합성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RNA가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원리 즉 ‘센트럴 도그마’를 내놓았다. 이어 프랑스와 자코브와 자크 모노는 대장균에서 ‘오페론’이란 유전자 발현의 조절 단위를 밝혀낸다. 이후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가속 페달을 밟아, 약 30억개의 뉴클레오티드 염기쌍의 서열을 모두 밝히는 기념비적 프로젝트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수된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인간의 유전자 수는 초파리나 꼬마선충보다는 많지만 작은 현화식물인 애기장대(2만5,000개)보다도 조금 적은 2만3,000개로 밝혀졌다. 유전자의 숫자만이 아니다. 발생유전학과 후성유전학은 유전 현상이 DNA 염기서열 정보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수정란도 유전체도 생명체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저자는 최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은유로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의 속성에서 오류를 찾고자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만화라는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던지는 질문의 철학적 깊이와 무게, 개념에 대한 철저한 논구에 있어 웬만한 책과 비교되지 않는다. 재독, 삼독을 권한다.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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