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도교육청 조사 결과
배치 비율 높을수록 크게 줄어
학교폭력 피해자 수도 적어

“선생님, 죽고 싶어요. 제가 죽으면 우리 아빠 그제야 후회하겠죠?”
지방의 한 공립 중학교에 재직 중인 상담전문교사 김모씨는 이 달 초 핏기 없는 얼굴로 자신을 찾은 한 3학년 남학생 A군을 잊지 못한다. 망설이며 상담실을 찾은 A군은 목숨을 끊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30점만 넘으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우울지수 검사에서 A군은 35점을 기록했다. 집 앞 조그만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틈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렸다. 작은 체구로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내던 어머니를 돕지 못해 A군은 괴롭다고 했다.
교사 김씨는 삶의 대차대조표를 그리게 하는 상담기법을 적용했다. 죽었을 때 벌어질 일,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조목조목 따져보던 A군은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노래를 작곡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상담실을 떠났다. 김씨는 “가족관계, 학교폭력 때문에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이 하루 평균 4, 5명 된다”며 “그들이 학교를 그만두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게 상담심리를 전공한 전문상담교사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2005년부터 일선 학교에 배치되기 시작한 전문상담교사는 학생 심리 분야 전문가다. 심리학과 전공학생이 교직을 이수해 임용고시를 붙거나, 3년 이상 경력 교사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했을 때만 전문상담교사가 될 수 있다. 전문성이 인정돼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직후 교육부는 전문상담교사를 대폭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이 학교폭력이나 학업중단의 억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최근 통계로도 뒷받침된 사실이다.
22일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개 시도교육청의 중고등학교 전문상담교사 배치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 전문상담교사 배치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학업중단 학생 감소폭이 컸고 학교폭력 피해율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문상담교사 배치비율이 30%가 넘는 시도교육청(대전 서울 부산 광주 경기 울산 인천 대구 경남)에서는 2013년 학업중단 학생 수 대비 2015년 학업중단 학생 수가 평균 28.2% 감소했다. 배치비율이 30% 미만인 시도교육청(충남 충북 제주 경북 전남 강원 전북 세종)에서는 같은 기간 평균 26.9%만 감소했다. 배치비율이 가장 낮은 세종(13.3%)에서는 학업중단비율이 유일하게 증가(17.3%)하기도 했다.
학교폭력피해 응답률도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교육부가 올해 상반기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피해 응답률을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전문상담교사를 30% 이상 배치한 교육청의 평균 피해 응답률(0.74%)과 30% 미만 배치한 교육청의 피해 응답률(0.94%)은 차이를 보였다. 교육부의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 결과’에서 올해만 6만558명에 달하는 초중고교 학생이 심리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관심군으로 분류된 점을 감안하면, 통계상 작은 차이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상담전문교사 인력 확충은 답보 상태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정부는 학교폭력근절대책을 발표해 3,500명 늘리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예산 등을 이유로 결국 250명만 늘리는 데 그쳤다. 2013년엔 최소한 학생 수 101명 이상 학교에 1명씩 상담전문교사를 배치하겠다는 수정안을 내놨지만 해당되는 7,331개교에 턱없이 모자란 1,800여개교에만 교사가 배치된 상태다. 박 의원은 “전문상담교사는 학생 심리 안정과 생활지도에 기여하는 역할이 크다”라며 “전문상담교사 확대 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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