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뢰도발 땐 투입 주저
이번엔 되레 먼저 출격 제안

지난해 북한의 지뢰도발 당시, 우리 군의 3차례 요청에도 미군이 전략무기의 한반도 투입을 주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올해 북한의 4ㆍ5차 핵실험 때는 미군이 전략폭격기 출격을 먼저 제안하며 대북 억지력을 과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군이 판단하는 북한의 위협수준에 따라 전략무기 운용이 좌우되면서,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군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22일 “지난해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로 우리 군 하사 2명이 크게 다쳤을 때,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미군에 무려 3차례나 전략무기 전개를 요청했다”며 “하지만 미 측은 한반도의 긴장이 불필요하게 고조될 것을 우려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아 끝내 무산됐다”고 밝혔다.
당시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하는 등 지뢰도발을 북한의 심각한 도발로 인식하고 총력대응에 나선 반면, 미 측은 오로지 정전협정의 안정적 관리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지뢰도발에 맞서 전략폭격기를 띄운다면 군사분계선(MDL) 근처까지 날아가야 하는데, 미 측은 그런 정도로 사태를 키우길 원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지난 1월 4차 핵실험과 이달 9일 5차 핵실험 때는 각각 나흘 만에 전략폭격기 B-52와 B-1B를 한반도로 출격시켰다. 심지어 B-1B의 경우, 첫 출격 8일 만에 다시 투입해 잇따라 무력시위를 벌이며 전례 없는 초강수로 맞섰다. 지뢰도발과 달리 북한의 핵실험을 최고수준의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추가 핵실험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미군은 내달 초 전략무기를 또다시 한반도에 보낼 예정이다.
물론 우리 군은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미군의 전략무기 전개를 반기고 있다. 하지만 양국간 협의에 따른 결정이라기보다, 사실상 미군이 정한 일정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전해져 뒷맛은 씁쓸하다. 그러다 보니 B-1B의 첫 출격 당시, 우리 군은 한시라도 빨리 한반도에 투입해야 한다며 애를 태우는데도 미군은 괌 기지의 강풍을 이유로 하루 늦추는 촌극을 벌였다.
이에 따른 국내 비판을 의식한 듯 21일 오산기지에 착륙한 B-1B는 당초 24시간 안에 미국령 괌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계속 머물고 있다. 미군은 24~25일 ‘에어 파워 데이’ 행사기간 B-1B를 공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B-1B를 국내에서 일반에 선보이는 건, 2005년 서울 에어쇼에 B-1B의 전신인 B-1폭격기가 참가한 이후 11년 만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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