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남 지역에 지진이 잇따르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남권은 국내 원전 설비의 4분의 3이 위치한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이다. 이번 지진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양산단층 주변에는 14기의 원전이 몰려 있다. 경주에 6기의 원전과 방폐장이 설치돼 있고 인근 부산과 울산에도 8기가 가동 중이다. 최근 건설 허가를 받은 신고리 5, 6호기를 포함하면 양산단층 일대의 원전은 총 16기에 달한다.
원전에 인접한 부산 울산 경주 등은 수도권에 이은 제2의 인구 밀집지역이다. 2011년 세계 최대의 원전 사고를 일으킨 일본 후쿠시마 발전소는 반경 30㎞ 이내에 약 16만명이 거주한 반면, 고리ㆍ신고리 원전 30㎞ 내 거주 인구는 380만명에 달한다. 시민단체 ‘원자력안전과미래’의 최근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신고리 3~6호기 중 한 곳에서라도 노심(爐心)의 현저한 손상을 초래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남ㆍ부산ㆍ울산 주민 1만6,240명이 1주일 안에 사망하고 향후 50년간 누적 암 사망자 수가 280만명에 이른다.
정부는 원전이 규모 6.5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돼 있어 문제 없다고 강변하나 전문가들은 7.0 이상의 강진 가능성을 경고한다. 원전의 안전성 평가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뤄지는 게 마땅하다. 따라서 정부는 신속히 양산단층을 비롯한 영남권 단층구조에 대한 정밀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월성 1호기를 비롯한 노후 원전이 충분한 내진 성능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강진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원전 증설 등 에너지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그간 ‘깨끗하고 안전한 발전설비’라는 인식 하에 원전 비중을 늘리는 정책을 계속 추진해왔다. 정부의 제7차(2015~2029년)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23기인 원전이 2029년 35기로 대폭 늘어난다. 여기에는 지난 수년간 급격히 둔화된 전력수요 증가세가 지구 온난화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력수요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철강을 비롯한 국내 주력산업이 구조적 침체기에 들어선 까닭이다. 실제 최근 4년간 국내 전력소비 증가율은 정부 예측치(4%)의 3분의 1인 연평균 1.5%에 그쳤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원전을 증설할 경우 과잉 설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는 경제지표와 동떨어진 전력수요 전망에 근거해 밀어붙이는 원전 증설 등 기존 에너지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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