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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IB와 베이징 지하철

입력
2016.09.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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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대니 알렉산더 수석 부총재 일행을 만났다. 그의 첫 마디는 “우리 세 명이 AIIB 직원의 5%에 해당합니다”였다. AIIB 전체 인원이 60명 정도라는 얘기다. 5년 후 700명까지 인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에 비춰 보면 채 10분의 1도 안 되는 숫자다. 하루가 멀다고 큼직한 이슈를 몰고 다니는 기관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생각보다 위용이 덜 갖춰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길지 않은 면담 동안 AIIB 관련 보고서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AIIB의 파급력에 대해 새삼 느끼면서 조급함마저 생겼다.

AIIB는 현재 단기적으로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과 협력해 초기사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 승인된 4건의 프로젝트처럼 이들과의 협조 융자를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연결 국가에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초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리스크 감소, 운영 노하우 습득, 조직 확대, 국제적 신뢰 확보 등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격적인 위용이 갖춰지는 4, 5년 후에는 그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AIIB 가입국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 20여 개국이 AIIB 추가 가입신청을 했다. 연말까지 회원국 및 신청국은 90개국을 넘을 전망이다. 얼마 전에는 캐나다가 우방인 미국의 만류에도 AIIB 가입을 공식화했다. 지역별로는 일대일로 정책과 연계해 ‘6대 회랑’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미얀마, 러시아, 중앙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유럽 등을 아우르는 ‘6대 회랑’연결국가는 60개국에 이른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주도의 새로운 금융질서 구축도 예상된다. 현재 중국은 AIIB 외에도 브릭스(BRICs) 신개발은행, 실크로드 기금, 상하이 협력기구 개발은행 등에 대한 운영에 착수했거나 준비 중이다. 이 기구들은 일대일로 건설에 필요한 자금 공급과 위안화 국제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한국 기업들의 참여는 제한적이고 금융기관의 대응도 미흡한 상황이다. 하지만 체계를 갖춰나가는 지금이 우리에게는 기회다. 이에 어떻게든 첫 단추를 잘 끼워보자는 의지로 오는 11월 한국에서 ‘AIIB 프로젝트 플라자’를 AIIB와 공동 개최할 계획이다. 내년에 제주에서 공동 개최할 예정인 AIIB 2차 연차총회도 협의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향후 인접 국가들에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프라 수요에 주목해 관련 기업들의 수주도 독려할 계획이다.

귀국길에 문득 10년 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기억이 났다. 당시 베이징의 지하철은 3개 노선밖에 없었다. 1호선, 2호선, 13호선이었다. 궁금해서 중국 학자에게 “왜 1,2 다음이 3이 아닌 13이냐?”고 물었더니 “1호선에서 13호선까지 최대한 빨리 완성하려는 정부 의지가 담긴 장기 플랜”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너무 지나친 허풍으로 들려 면전에서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최근 베이징을 방문하고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10년도 채 안 돼 베이징에는 1~13호선은 물론 15호선까지 완공돼 도심과 외곽을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연결하고 있었다.

AIIB는 출범 전에 많은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과 성과에 의구심이 적잖다. 하지만 일대일로와 AIIB는 중국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베이징의 지하철처럼 13호선까지 금방 완공하고 15호선, 20호선으로 뻗어 나가는 건 시간문제다. 한국기업들의 외연이 일대일로와 AIIB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기관, 민간기업이 역량을 결집해야 할 시점이다.

김재홍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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