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앨리스 해밀턴
제인 애덤스의 ‘헐 하우스(Hull House)’는 또 한 명의 걸출한 인물 앨리스 해밀턴(Alice Hamilton)을 배출했다. 해밀턴은 헐 하우스 초기부터 이주민 노동자 건강 상담 등 보건ㆍ 의료 진단 업무를 맡았고 그 경험을 계기로 직업병, 특히 산업현장 유해 화학물질과 노동자 질병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작업장 환경 개선과 도시 공해의 치명적인 영향을 고발한 학자다.
뉴욕 출신인 해밀턴은 1893년 미시간 의대를 나와 미니애폴리스 병원 등서 여성ㆍ소아과 인턴과정을 이수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1895~97)에서 세균학과 병리학을 공부했다. 97년 귀국해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여성의과대학 병리학과 교수가 됐고, 헐 하우스에서 애덤스의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당시 노동 여건은 산업혁명 직후 유럽 노동자들의 삶만큼 열악했고, 특히 궂은 일은 이주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저임금과 착취에 저항해서 일어난 시카고 헤이마켓 폭동사건(1886.5) 관련자 4명이 사형 당하는 등 노동ㆍ사상운동 탄압도 극심했다. 헐 하우스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며 해밀턴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훗날 자서전(‘닥터 앨리스 해밀턴’, 한울)에 썼다. 납 중독의 원인을 노동자들이 손을 안 씻은 탓이라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는 작업장 환경을 조사해 납, 이황화탄소, 일산화탄소, 각종 분진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밝혔고, 정부에는 규제법안을 사업주에게는 작업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1908년 일리노이주가 미국 최초로 직업병 조사위원회를 설립한 것도 해밀턴의 공이었고, 그 조직에 가담해 실질적으로 이끈 것도 그였다. 그러면서도 해밀턴은 헐 하우스 일을, 또 애덤스가 벌이던 국제 평화운동과 여성ㆍ아동 인권운동을 적극적으로 거들었다.
1919년 하버드 의대는 산업보건학과를 신설, 해밀턴을 조교수로 임용했다. 40년대 중반까지 여학생 입학조차 불허했던 하버드 의대의 첫 여성 교수였다. 대학 측은 세 가지 임용 조건을 단다. 교수회관 이용 금지, 미식축구장 출입 금지, 졸업식 등 학사 행사 참여 불허. 당시 뉴욕트리뷴은 그의 임용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으로 “마지막 성채가 무너졌다”고 썼고, 해밀턴은 “네, 제가 첫 여성입니다. 하지만 임용됐어야 할 첫 여성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산재와 직업병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1868년 2월 27일 태어나 1970년 9월 22일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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