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을 방문중인 윤병세 외교 장관이 20일(현지시간) 다비드 초께우앙까 쎄스뻬데스 볼리비아 외교 장관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해 윤 장관이 최근 유엔 총회 무대에서 벌이고 있는 대북 압박 외교전의 일환입니다.
외교부가 이 회담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단 제목은 ‘중남미 핵심 좌파 국가,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에 동참하다’였습니다. 볼리비아가 지난 14일 북한의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 이번 회담에서도 북한 핵실험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것입니다.
눈길을 끈 것은 외교부가 사용한 ‘좌파 국가’라는 단어였습니다. 언론에서 좌ㆍ우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남미의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을 ‘좌파 정권’으로 지칭하긴 하지만, 외교부가 어떤 나라를 향해 쓸 수 있는 외교적 용어는 아닙니다. 좌ㆍ우파란 용어를 가치중립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편향이 담긴 ‘정파적 용어’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교부가 그간 ‘좌파 국가’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외교부는 아마도 ‘윤 장관이 친북 좌파적인 볼리비아도 북한 규탄에 동참시켰다!’며 그 성과를 부각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볼리비아는 1965년 우리와 수교를 했지만 북한과는 아직 수교도 맺지 않은 나라입니다. 두 나라가 비동맹운동회의 회원국이긴 하지만, 볼리비아는 북한의 수교 요청을 번번히 거절했습니다. 북한과의 수교로 얻는 실익이 크지 않아 우리와의 우호관계를 더 중시한 것이죠. 외교부도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핵심 좌파 국가’란 말을 사용한 것은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좌파=친북’이란 대중적 이미지와 편견을 활용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외교부가 ‘오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더 걱정스러운 대목도 있습니다. 좌ㆍ우파란 말을 가치중립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면 외교부는 일본을 ‘우파 국가’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을 우파 국가로 지칭한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조선일보와 청와대 갈등의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흑색선전이 담긴 ‘찌라시’가 시중에 나돌고 있다며 개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찌라시에 ‘전형적인 좌파적 수법으로 사안을 키웠음’이란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조 의원은 “기업 대관팀이나 기자 등은 사용하지 않는 표현으로서 작성자가 검경이나 국정원 등 사정기관 쪽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며 적었습니다. 사실 저런 식의 표현은 이념적 색채가 강한 보수 진영 일각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여기서 좌파는 가치중립적 표현이 아니라, 그야말로 ‘친북ㆍ빨갱이ㆍ허위선동’등과 동급으로 쓰이는 정파적 용어입니다. 현 정부의 사정기관에 몸 담았던 조 의원의 말을 보면 그 정파적 용어를 어느새 검경과 국정원이 관련 문건이나 보고서를 쓸 때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사회 진영간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국민통합을 이뤄야 할 정부가 덩달아 정파색에 물들어 이념적 편가르기에 휩쓸리고 있고 그 흐름이 행여나 외교부에까지 파급된 게 아닌지 우려돼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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