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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 시스템에 메스... ‘뒷북 등급 조정’ 사라질까

입력
2016.09.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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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뒷북 강등 사태 재발 막으려

자체신용도 도입ㆍ부실 신용평가 제재 강화

제4 신용평가사 진입은 유보해 한계

전문가 “등급쇼핑 막으려면 3사 과점 깨야”

41판-한진해운신용등급/2016-09-21(한국일보)
41판-한진해운신용등급/2016-09-21(한국일보)

최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줄곧 영업손실을 냈지만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2014년 3월까지 줄곧 A등급을 부여했다. 이후 등급을 소폭 낮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투자등급’에 해당하는 BBB-를 유지했다. 꿈적하지 않던 신평사들은 올 들어 한진해운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등급 조정에 나섰다. 지난 3월말 BB-로 무려 3단계를 내린 뒤, 지난 4월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고 공시하자 B-로 다시 3단계를 추가 강등한 것이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신용등급이 내려가기 바로 직전 세 차례(2월24일~3월10일)에 걸쳐 3,100억원에 가까운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미 회사채를 사들인 투자자로선 신평사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신평사들의 ‘늑장 등급조정’ 등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평가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21일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기업 반발로 도입이 번번이 무산됐던 개별기업의 ‘자체신용도(독자신용등급)’ 제도를 도입하고 부실평가에 대한 신평사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제재 수준을 대폭 강화한 게 골자다. 하지만 기존의 3사 과점 체계를 깨고 시장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업계에서 줄곧 요구했던 제4 신평사 진입은 이번에 유보돼 정부가 결국 대형 신평사들의 입맛에 맞는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방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자체신용도 도입이다. 자체신용도란 모기업이나 계열사 등의 지원가능성을 제외하고 개별기업 스스로 채무상환 능력을 갖췄는지는 보여주는 지표다. 지금까지는 신평사들이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고려해 개별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기다 보니 실제 가치보다 신용등급이 높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자는 높은 신용등급을 보고 투자했는데, 정작 모기업이 갑자기 지원을 끊으면 기업의 신용등급이 대폭 강등돼 이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당국은 우선 내년부터 민간 금융사를 상대로 우선 시행하고 일반 기업은 2018년부터 전면 시행키로 했다.

아울러 당국은 발행기업이 원하면 금감원 등 제3의 공적기관에 신평사 선정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했다. 발행사가 신평사를 선정하는 구조에선 등급을 잘 주는 신평사에 기업이 몰리는 ‘등급 쇼핑’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또 부실평가에 대한 신평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등급 장사’ 등 불건전 영업행위를 한 신평사에 대해선 최대 인가취소 처분을 내리는 등 제재를 대폭 강화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조치에 대해 전체적인 방향은 맞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신평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려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기업은 당국이 신평사를 정해주는 지정제 형식으로 가야하는데 당국은 이번에 이걸 기업 자율에 맡겼다”며 “기업이 따라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이 당국의 정해준 신평사에서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3곳 중 1곳이어서 기업으로선 얼마든지 등급 장사를 하는 게 가능하다”며 “3사 과점체계를 깰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방안에서는 기업과 신평사 간 유착을 막기 위해 기업이 아닌 투자자 등이 신용평가를 신청할 수 있는 ‘제3자 의뢰평가’도 허용했지만, 이 또한 실효성은 많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다. 해당 기업의 정보 제공 없이 이뤄지는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쉽지 않을 거란 얘기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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