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주로 고용이라고 하는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 노동을 내용물로 본다면 고용은 그것을 담는 상자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노동시장이라고 하는 방에는 이러저러한 노동을 담고 있는 고용 상자들이 가득한 셈이다.
노동시장은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규범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청년고용정책은 노동시장의 방에 젊은이들이 새롭게 진입하도록 기업들이 최대한 튼튼한 고용 상자들을 많이 만들어 낼 여건을 잘 조성해 주는 것이 주요하다. 고령 고용정책은 한 노동시장의 방에서 퇴장하려는 고령자들에게 그들이 가급적 천천히 방을 나갈 수 있게 하면서도, 필요하다면 옆 방에 적절한 크기의 새로운 상자에서 좀 더 노동을 이어가게 하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주를 이룬다.
이렇게 본다면, 고용정책이란 어떤 노동시장의 방에 어떤 크기와 두께의 고용 상자들을 얼마나 많이 생기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유능한 정부일수록 양질의 노동이 들어갈 수 있는 튼튼한 고용 상자들을 많이 생기게 한다. 선진국에선 정부가 노동시장의 관리에 정권의 명운을 건다. 문제는 상자가 튼튼할수록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거다. 즉, 고용 안정성을 높일수록 비용이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는 상자를 만들 유인이 떨어진다. 따라서 기업이 비용을 감당 가능하도록 하면서도 적절한 안정성이 유지되는 고용 상자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핵심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고용대란 시대. 두꺼운 상자들이 들어 있는 큰 방 바깥에는 취업준비생들이 줄을 선다. 급한 대로 작은 방도 택하고 가벼운 고용 상자를 취해 보기도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50대 중반이면 방 밖으로 밀려 나오는 고령자들. 이전만큼 튼실한 상자를 얻어 평생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재활용할 수 있는 상자를 얻고 싶지만, 그건 사치다. 대신 아무 안내 없이 자영업의 위험한 모험 길을 가거나 낯선 작은 방들의 문을 두드리고 가벼운 상자 속으로나마 재진입을 시도해 본다. 뭐라도 얻으면 감지덕지 다.
잘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이미 고도성장기를 지났다.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제조업의 새로운 붐을 쉽게 기대하기도 어렵다.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며 노동시장 방들의 크기를 키워 보겠다던 정부의 시도는 결과가 별로 신통치 못하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고용 상자를 없앤다는 걱정스러운 이야기들만 귓가를 맴돈다. 대안은 없나.
고용이라는 상자의 크기를 좀 줄이면, 노동시장의 방에 담을 수 있는 상자의 숫자를 늘릴 수 있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 노동시간 단축 등 그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주장들이다. 하지만 실상 정부정책도 그렇고 노사관계 주체들도 그렇고 별로 적극이지 않다. 정권 초 이야기했던 시간선택제는 결국 크기만 작은 게 아니라 두께도 얇아진 상자들만 그것도 소수 만들어 내고 말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노동시간 단축 법안은 늘 물타기 되어 국회 주변을 배회할 뿐이다.
크기를 줄이지 않아도 전반적으로 얇게 만들되 혁신소재를 활용하여 강도를 잘 유지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서유럽에서 말하는 소위 ‘유연 안정성’의 한국판을 모색하는 거다. 그러려면 우리의 맥락에서는 노동에 결부된 부대비용에 국가의 책임이 높아져야 하고, 분배 정책상의 획기적인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작고 얇아도 튼튼한 새로운 모습의 고용 상자들이 노동시장의 방을 채우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양자의 이 통합되지 않은 공존상황도 모두 대안이 아니다. 일자리 정책을 고민하는 사고방식과 담론의 혁신, 그리고 정책실현에 결정적일 수 있는 사회적 이해조정의 필요는 계속된다. 일하는 이들이 세대를 통틀어 다 함께 만족스러울 수 있는 길을 향한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 ‘노동개혁’이라는 독백적 구호의 반복만으론 턱도 없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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