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아레키파였다. 호스텔 내에 2인용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었다. 더없이 고결하고 우아해 보였다. 제 몸뚱이도 간수하기 힘든 이 여행지에 어떤 사연으로 건너온 걸까. 자전거의 주인공은 프랑스 커플 스와직(Soizic, 30)과 세바스티앙(Sebastien, 36). 여행은 단 한 번뿐인 삶에서 다각도, 다색채의 인생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자가 묻고 여행자가 답했다.
Q. 왜 하필 2인용 자전거를 택했는가?
여행은 술 한잔 하다가 결정했다. 뭔가를 발견하는 여행을 상상했다. 짐을 다 꾸린 뒤 이동 수단을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사람들을 만난다? 글쎄, 빠르긴 하지만 놓치는 게 너무 많을 것 같았다. 자전거는 평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2인용 자전거는 우리가 완벽하게 함께일 수 있잖아? 그래서 결정했다. 고민 없이.
Q. 비행기 탑승 시 큰 문제는 없었나?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가 탑승할 에어유로파(AirEuropa)의 자전거 수화물 가격은 대략 150유로 정도였다. 돈만 내면 됐다. 그런데 자전거 박스를 찾는 게 어렵더라. 여러 항공사에 문의하다가 에어프랑스가 이걸 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박스만은 따로 안 판다고 해서 절망했다. 다행히 에어유로파가 에어프랑스와 같은 스카이팀 항공사에 소속되어 있어서 겨우 얻을 수 있었다. 기본 자전거 박스는 5유로인데, 우린 2인용 자전거니까 10유로를 내야 했다. 박스가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아무튼 우리의 ‘레이싱 카’도 비행기를 탈 준비가 되었다!
Q. 2인용 자전거 여행은 처음인가? 어떤 루트였는지?
자전거 여행은 처음이었다. 페루와 볼리비아를 주 여행지로 한 100일간의 여정이었다. 페루의 리마에서 시작해 팬 아메리카나(Pan America) 도로를 따라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로 내려갔다. 이후 볼리비아를 관통해 7가지 색채의 산을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 북쪽인 후후이(jujuy)를 들렸다가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adro de Atacama)에서 정거했다. 이는 고리처럼 연결되는 루트다. 다시 볼리비아의 리페즈 남부 사막(Desierto del Sur Lipez)을 거쳐 페루의 쿠스코를 훑은 뒤 리마에서 이 여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Q. 왜 이 루트를 택했나?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와 너무 다른 문화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으니까.
Q. 2인용 자전거 여행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
장점 : 우리의 속도에 맞춰 여정을 이어갈 수 있다. 어떤 제약 없이 우리 식대로 여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고 싶을 때 가고 힘들면 멈춘다. 더불어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기도 쉬웠다. 아, 이 자유를 그 어떤 즐거움과 바꿀 수 있을까?
단점 : 간혹 버스나 트럭에 자전거를 실어야 할 때 힘들었다. 자전거 무게가 25kg이다. 짐 값을 빙자해 돈도 엄청 받으려고 했다. 승객의 버스 요금보다 비싼 경우도 꽤 있었다. 다리와 엉덩이의 고통은 또 어찌 말로 표현할까. 텐트를 포함해 35kg인 우리의 짐을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우린 한 번도 자전거 여행을 해보지 않았다. 체력적인 문제가 컸다. 드물긴 했지만, 숙소에서 자전거 때문에 숙박을 거부하기도 했다. 우리가 가는 루트가 해발 2,300m는 기본이니까 호흡 곤란을 겪기도 했다. 짚고 보니 단점이 많은 듯하지만, 장점의 감동에 비해 새 발의 피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리페즈 남부 사막(Desierto del Sur Lipez, 우유니 사막을 포함해 라구나 콜로라다, 라구나 베르데 등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선이 있는 볼리비아의 절경 지대)을 건널 때 우린 2인용 자전거를 타고 10일간의 종주를 기획했다. 그런데 이게 48시간 후 악몽으로 변했다. 눈 폭풍이 몰아치면서 라구나 베르데(Laguna Verde)에 친 텐트가 박살이 난 거다. 바람이 모질게 불어 도저히 전진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2인용 자전거는 물론 거의 모든 짐을 그 자리에 두고 대피소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4일간 추위와 싸워야 했다. 우리가 꼭 완주하고 싶었던 코스였는데 좀 슬펐다. 지금은 이게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2인용 자전거가 없었을 때의 에피소드도 기억난다. 페루의 아레키파 근처에 있는 산, 미스티(Misti)에 도전한 경험이다. 해발 5,822m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블랑이 해발 4,809m다. 명실공히 우리의 첫 등반이었는데 호흡 곤란으로 정상을 찍진 못했다. 그래도 실망하진 않는다. 이것 역시 인생 수업이 아닌가. 우리가 올랐다는, 그리고 언젠가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Q. 자전거가 고장 나서 곤란한 적은 없었나?
리마에 도착한 첫날! 재수가 없었다. 2인용 자전거의 페달이 고장 났다. 수리공을 수소문하다가 지노란 청년을 만났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니 그가 없었다. 어쩌지? 우리의 자전거 여행은 끝인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그가 나타났다. 아직도 자전거를 회생시킬 수리공이 등장할 때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후 힘차게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Q. 다른 나라에서 첫 탑승 시 기분은 어땠나?
리마를 자전거로 달렸다. 정말 특별한 기분이었다. 페루인의 시장과 거리, 그 공기! 미친 듯이 풍경이 돌아가고 경적이 귀를 먹게 했다. 꼭 애니메이션 같았다. 함께 웃고 즐기는 기분에 빠지는 따뜻한 교감이 있었다. 간혹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와, 이제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야. 잊지 못할 첫 경험이었다.
Q. 대부분 현지인이 신기해하지 않았나?
항상 쳐다보며 미소를 짓곤 했다. 이게 우리가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다. 가끔 가까이 와서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주로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냐는 질문이었다. 간혹 ‘왜 이걸 타고 여행해? 미쳤어?’라고 묻기도 했다. 하하. 그런데 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모두 한 번쯤 타 보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2인용 자전거를 본 적이 없으니까. "Una doble bicicleta(스페인어로 2인용 자전거)!"라면서 어린아이처럼 웃곤 했다.
Q. 둘이 싸우면 여행이 더욱 곤란해질 것 같은데, 그런 적은 없나?
우린 그다지 싸우지 않는 편이다. 언제나 다른 체력적인 차이가 있을 뿐. 세바스티앙은 미친 듯이 밟고 스와직은 멈추고 싶을 때가 많다는 차이랄까. 그럴 때 가끔 언성을 높이긴 한다. 피곤하니까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만일 싸우게 된다면 우린 이 상황 자체를 묻어 놓는다. 나중에 대화하자고 합의를 보는 편이다.
평소 대화를 많이 하면 싸우는 횟수가 적어진다. 우린 의견 충돌이 있을 법한 건에 대해 상대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물론 세바스티앙이 좀 너그러운 성격이어서일 수도 있다. 정말 화를 잘 안 낸다.
Q. 이번 여행으로 배운 점은 무엇인가?
2인용 자전거 여행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두 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방법, 그리고 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상대를 위해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내버려 두지 않고 함께 한다.
우린 가장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함께 했다. 함께 경험하면서 더 많은 걸 느끼고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판단했다.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같은 흥미를 키워나간다는 것도 좋았다.
Q. 앞으로 설계하는 미래는?
우리의 꿈과 열정은 대부분 같은 방향이다. 다른 나라로의 탐험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는 우리가 더욱 꿈꿀 수 있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조만간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다. 프랑스든 다른 어느 나라든 햇살 좋은 곳에서.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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