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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한반도에 드리운 핵전쟁 먹구름

입력
2016.09.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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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로 치닫는 北 핵 도박

제재ㆍ압박만으로 해결 어려워

더 늦기 전 새로운 틀 만들어야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사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사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들이 둘러앉은 밥상 머리의 화제에 지진과 핵이 빠지지 않았을 터이다. 연휴 이틀 전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으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느낌이 확 들었고, 그 사흘 전에 이뤄진 북한의 5차 핵실험은 어느 날 서울 상공에 핵폭탄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크게 증폭시킨 탓이다.

지진 불안이야 5.0 이상 규모 발생 빈도가 매우 낮은 만큼 시간이 흐르면 금방 무뎌질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는 북한 핵은 상황이 다르다. 김정은 정권의 핵 보유국 지위 확보 의지가 어느 때보다 확고해 보이는 가운데 일부 언론들은 ‘서울 용산 상공에 15kt 핵폭탄이 터지면’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가상 영상과 함께 무시무시한 피해상황을 추정 보도해 불안감을 한층 자극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 중 방학을 맞아 귀국한 큰딸도 그 보도를 보면서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남북 간 핵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심상치 않은 한반도 위기를 설명하며 짐짓“미국으로 이민 가야 할지 모르니 터 잡아 놓아라”고 했더니 “서울에서 핵 폭탄으로 죽을 가능성보다 미국에서 총 맞아 죽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가당치 않다는 반응이다.

미국의 빈번한 총기 사고를 감안하면 딸 아이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핵무기를 만든 이후 70여 년이 지났지만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딱 두 발을 사용했을 뿐이다. 핵무기는 군사무기라기보다는 정치적 무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반도 위기상황은 핵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김정은의 정신 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규탄했다. 권력 유지를 위해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어떤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은 “우리에게 급박하게 닥친 현존하는 위협”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위기감에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렵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통제불능의 정신 상태, 쉽게 말해 미쳤다는 김정은에 대해 지혜롭게 대응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얘기는 다르다.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는 북한 분석기사를 통해 “미치광이기는커녕 너무나 이성적인 나라”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이 정권(체제) 유지를 위한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라는 정치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보수성향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엊그제 비슷한 시각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김정은이 어리고 미숙하다는 전반적 평가와는 달리 할아버지 김일성과 같은 “노련한 독재자”라는 것이다.

사드 한반도 배치가 북한의 5차 핵실험을 부추겼다는 중국 일각의 주장은 억지다. 하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로 대북 압박 국제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그 틈새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5차 핵실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비난 강도는 4차 때보다 확실히 약하다.

19일은 북한 체제보장과 북핵 폐기를 맞바꾸기로 한 9ㆍ19공동성명 채택 1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6자회담 틀 속에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방식으로 북핵 폐기를 이뤄간다는 이 공동성명의 기본 정신은 아득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8년째 열리지 않고 있는 6자회담 무용론이 제기된 지도 오래다. 막무가내의 김정은 체제를 상대로 대화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생뚱맞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봉쇄와 압박만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앞의 뉴욕타임스 기사는 체제유지를 위한 ‘이성적 행동’이 벽에 부딪치면 자포자기에 빠지고 핵무기라는 극단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핵무기를 사드로 막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한민족 절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압박과 대화를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그 의무가 박 대통령의 연약한 어깨 위에 지워져 있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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