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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오디세이] 안티 없는 ‘착소남’… ‘응팔’ 저주 빗겨 간 박보검

입력
2016.09.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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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했던 '바둑기사'가 사극에서 '사랑꾼'이 돼 인기다. tvN '응답하라 1988'로 주목 받은 배우 박보검이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도약대 삼아 새로운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KBS 제공
순진했던 '바둑기사'가 사극에서 '사랑꾼'이 돼 인기다. tvN '응답하라 1988'로 주목 받은 배우 박보검이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도약대 삼아 새로운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KBS 제공

‘다른 반 학생들의 출입을 불허한다’. 최근 온라인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뒷문에 이 같은 문구와 함께 배우 박보검(23)의 사진이 붙어 있는 풍경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박보검이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구르미’)에서 말해 유행어가 된 “불허한다”란 대사를 활용한 패러디다. 이 사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학생에 따르면 ‘박보검 포스터’는 6학년 모든 반 교실 뒷문에 붙어 있다. 연예인에 한창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이 지금 학교에서 또래와 관심사를 나누는 가장 ‘핫’한 배우가 박보검이란 얘기다.

한 여자고등학교 교실에 붙은 알림. 배우 박보검이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말해 화제가 된 "불허한다"를 패러디 했다.
한 여자고등학교 교실에 붙은 알림. 배우 박보검이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말해 화제가 된 "불허한다"를 패러디 했다.

이준기ㆍ아이유 잡은 이변

박보검이 ‘구르미’를 통해 새로운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1월 순진했던 바둑기사 최택으로 인기를 누렸던 ‘응답하라 1988’ 때보다 그에 대한 반응은 더 뜨겁다. 그는 ‘구르미’에서 세자 이영 역을 맡아 외척 세력을 만나면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를 머금는 거친 모습을 보이다가도 여장남자인 내시 홍라온(김유정)에 사랑에 빠진 청년으로서의 순수한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며 젊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보검의 새로운 모습에 힘입어 ‘구르미’는 지난 13일 19.7%(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경쟁 드라마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려’(5.8%)를 가볍게 따돌리는 이변을 연출했다. ‘구르미’는 배우 이준기를 비롯해 가수 아이유와 엑소 멤버 백현 등 여러 아이돌을 앞세운 ‘보보경심:려’의 호화 캐스팅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 예상됐다. 박보검은 광고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KBS관계자에 따르면 박보검의 인기로 드라마에 광고가 몰려 6회부터는 본 방송 30초를 줄이고 15초 광고 두 개를 대신 넣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보검은 KBS2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살인자 변호사 역을 맡아 서늘함을 보여줬다. KBS 제공
박보검은 KBS2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살인자 변호사 역을 맡아 서늘함을 보여줬다. KBS 제공

사이코패스로 연기 저변 넓히고, 소년과 남자 사이 판타지까지

방송가엔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저주’란 말이 떠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지만, 차기작에선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거나 흥행에 실패해 쓴 맛을 본 배우들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보검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저주를 푼 보기 드문 배우다. 그는 데뷔 후 첫 사극 드라마인 ‘구르미’에서 차분한 대사 처리 등 흔들림 없는 연기로 캐릭터를 무리 없이 이끈다. 데뷔 5년 차 밖에 안 됐지만 다양한 캐릭터 소화를 통해 연기의 힘을 쌓아온 게 밑거름이 됐다.

영화 ‘블라인드’(2011)의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박보검이 소리 없이 주목 받기 시작한 건 ‘차이나타운’(2014)부터였다. 그는 온 집안에 압류로 인해 ‘빨간 딱지’가 붙은 상황에서도 요리사가 되려는 꿈을 버리지 않는 의지의 청년 석현으로 나와 어두운 영화에 활기를 줬다. 이듬해엔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사이코 패스 변호사인 정선호 역을 서늘하게 소화하며 새 옷을 입었다. ‘구르미’의 제작을 총괄하는 강병택 KBS 드라마국 책임프로듀서는 “박보검이 토란 소년으로 나온 영화 ‘명량’ 등 그의 출연작을 다 봤는데 20대 배우치곤 연기가 안정적이고 스펙트럼이 넓어 보였다”며 “그래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이영 역으로 캐스팅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써 남성적인 면으로 어필하려 하지 않고 여린 소년성을 잘 활용한 점도 주효했다. ‘응답하라 1988’ 속 최택과 ‘구르미’ 속 이영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상처를 지닌 청년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박보검이 차기작에서 무리하게 재벌2세 남성 캐릭터로 변신하지 않고 택이로 설정된 여리고 풋풋한 박보검의 캐릭터를 이어가면서 ‘구르미’에선 좀 더 성장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통했다”(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분석이다. 박보검 소속사인 블러썸엔터테인먼트의 승병욱 본부장은 “보검이가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박보건은 tvN '응답하라 1988'의 어수룩한 고교생 최택을 연기하기 위해 오디션 현장에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다. tvN 제공
박보건은 tvN '응답하라 1988'의 어수룩한 고교생 최택을 연기하기 위해 오디션 현장에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다. tvN 제공

김수현ㆍ이민호와 다른, 유재석 같은 ‘청춘 배우’

박보검이 소비되는 방식도 눈길을 끈다. 그는 김수현, 이민호, 이종석 같은 또래 배우처럼 카리스마나 개성으로 뜬 스타가 아니다. 한창 톡톡 튀어야 할 20대 배우인데도 ‘바른 생활과 성품’으로 주목 받는다. 온라인에선 박보검이 KBS2 ‘해피선데이’의 코너 ‘1박2일’ 등 예능프로그램에서 선배의 이부자리를 개고, 밥상에 젓가락을 놓는 예의 바른 모습이 끊임없이 회자된다.

박보검은 영화 '명량'에서 성웅 이순신에게 깨달음을 주는 토란 소년을 연기했다.
박보검은 영화 '명량'에서 성웅 이순신에게 깨달음을 주는 토란 소년을 연기했다.

별명까지도 ‘감사 보검’이다. “감사합니다”란 말을 하도 입에 달고 살아서다. 지난 8월 ‘구르미’ 제작발표회에서 박보검은 10번이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뒷얘기가 무성한 연예계에서도 그를 향한 미담이 쏟아진다. “휴대폰 문자까지 예의 바르고 정확하게 보내는 바른 생활 사나이”(신원호 ‘응답하라’ 시리즈 PD), “‘응답하라 1988’로 뜬 뒤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홀로 편집실에 찾아와 치킨과 피자를 선물한 정 많은 친구”(김대주 ‘꽃보다 청춘’ 작가) 등이 그와 함께 작업한 제작진들이 들려준 뒷얘기다. 박보검은 예능프로그램이나 공식적인 행사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후원 티셔츠를 입거나 평화의 소녀상 팔찌를 차고 나가며 선한 이미지를 쌓아간다. “순수, 성실, 믿음, 신뢰 등의 이미지를 주며 ‘착한 소년 남자’로 소비되는 게 다른 20대 스타들과 다른 점”(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이다.

박보검의 팬카페 이름은 ‘보검복지부’다. 보건복지부를 연상케 한다. 팬들도 박보검이 주변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다. 박보검에게는 ‘안티’도 없다. “잠재적 팬 층을 고려하면 송중기보다 박보검의 성장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드라마 제작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중국에서 한류 대행사업을 하고 있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보검은 중국에서 김수현, 송중기, 이민호 등 ‘A급 스타’들의 턱 밑까지 쫓아 올 정도로 주가가 뛰었다. 한 의류 CF를 통해 불거져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중국 비하 논란’이 아킬레스건이다.

더 높은 도약을 위한 숙제도 있다. ‘구르미’를 제외하면 박보검은 작품을 선택했다기 보단 선택을 받아 화제가 됐다. 연기가 안정적이지만, 캐릭터 표현력이 무르익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박보검이 20대 중반 이후 소년에서 남자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선 ‘구르미’ 이후 어떤 작품을 선택해 (새로운)색을 입히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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