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옛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진리로 통한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친해지기 쉽고, 그런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게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들의 교우 관계에 대해 퍼붓는 잔소리 중 하나는 “그 친구, 공부는 잘하니? 집은 잘 사니?”이다. 이왕이면 똑똑하고 부유한 친구와 어울려 그룹을 만들고, 나중에라도 덕 볼 수 있는 친구를 만들라는 의미다.
김형준 부장검사에게 스스럼없이 “친구야”라고 불렀던 고교 동창 ‘스폰서’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인물로 비춰졌을까. 유유상종의 원칙을 적용하면 검사만큼 공부를 많이 했거나, 검사만큼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적어도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검사의 친구라면 나쁜 짓을 일삼을 사람은 아니라고 믿기 쉽다.
“검사 친구 이름을 팔고 다녀서 거래처에선 소송을 고민하다가도 망설였다. 또 검사 친구의 존재는 상인들이 믿고 거래를 하게끔 만드는 무기이기도 했다.” 70억원대 사기ㆍ횡령 혐의로 구속된 ‘스폰서’ 사업가 김씨의 동업자가 언론에 이야기한 내용이다.
사건을 무마해달라고 검사 친구에게 청탁한 사업가나 1,000만원이 넘는 금품과 값비싼 술 접대를 받고 이에 응한 혐의를 받고 있는 부장검사의 관계에 ‘우정’ 운운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 덕 볼 수 있는 친구를 사귀라는 가르침에는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毋友不如己者).’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친구 사이에 바른 일을 하도록 권하는 게 도리이므로, 덕이 자신만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맥락을 잘라내면 무시무시하고 냉혹한 말이 된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흙수저’와는 사귀지 말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또 다른 스폰서 관계로 주목 받은 진경준 검사장과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회장도 이 가르침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 재학 중 잇따라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검사들이 선망하는 주요 보직을 거쳐,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으로 승진한 진경준 검사.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등 히트 게임을 잇따라 내놓으며 넥슨을 국내 1위 게임업체로 키운 ‘벤처 신화’의 주인공 김정주 회장. 각각 공직자와 기업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상대는 자신이 갖지 못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친구였다. 결국 자신보다 ‘나은’ 친구를 인생의 보험으로 잘 사귀어놓았던 셈이다.
넥슨 재팬의 ‘공짜 주식’에 대해 법정에서 “단짝 친구의 호의와 배려”(진경준),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뇌물이 맞다)”(김정주)는 엇갈린 진술을 해 우정의 본색이 드러났으나, 이 사건만 아니었다면 ‘함께 할 땐 두려울 것 없는 친구’ 관계가 계속 유지됐을 지도 모르겠다.
정보기술(IT) 기업 경영진인 고교 동창에게 ‘사업 하는 데 어떤 친구가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대출 등 자금 지원 결정권을 가진 금융기관 사람, 정부의 각종 기업 지원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친구라면 좋겠다. 검사 친구까진 바라진 않지만 만약 있다면 존재만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뭔가 도움을 받으면, 그에 따르는 성의 표시를 해야 할 텐데 그것 또한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MIT의 알렉스 펜틀랜드 교수는 사람들이 느끼는 우정의 절반 가량은 거짓이라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자신이 100% 친구라고 믿는 사람들 중 상대도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경우는 5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게 하려면 소통과 교류를 늘려야 하는 게 상식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선 내가 상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대 이익’의 크기를 보여주는 게 빠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당신은 어떤 친구가 필요합니까.
한준규 산업부 차장 manb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