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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연구를 실컷 하는 덕후들 집합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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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연구를 실컷 하는 덕후들 집합소입니다”

입력
2016.09.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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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모두의연구소 소장이 연구원들과 함께 만든 드론, 자율진행 장난감 등 시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타율적인 연구보다 주도적으로 하는 연구, 경쟁하는 연구보다 상생하는 연구를 하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소장이 연구원들과 함께 만든 드론, 자율진행 장난감 등 시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타율적인 연구보다 주도적으로 하는 연구, 경쟁하는 연구보다 상생하는 연구를 하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저녁에만 유독 북적거리는 연구소가 있다. 딥러닝 연구실, IoT(사물인터넷) 연구실, 드론 무력화 연구실, 범죄 분석 프로젝트,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젝트, 자율주행 드론 연구실…. 이름만 보면 얼핏 IT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나 대학원 내 연구실 같기도 하지만 이곳은 기업이나 정부기관, 대학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독특한 연구소다. 여기에서 연구하는 이들도 대학원생에서 공대 학부생, 고등학생, 기업 연구원, 예비 창업가 등 다양하다.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연구 주제로 연구실을 꾸릴 수 있고 타인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곳. ‘모두의연구소’다.

1년여 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이 연구소를 차린 이는 LG전자 연구원 출신 김승일(40)씨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승일 박사는 이 연구소를 가리켜 “덕후(특정 분야에 이상할 정도로 열중하며 집착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인 오타쿠를 변형한 속어) 집합소라고 할 수도 있고 집단 지성에 기댄 새로운 형식의 대학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기존의 대학원이나 정부 출연 연구소, 기업 연구소에선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주제의 연구를 마음껏 할 수가 있어요. 지도 교수는 없지만 오픈 소스와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는 거죠. 저도 조금 도와드리고요.”

‘비공식 지도 교수’ 역할을 하는 김 소장의 다른 직업은 발명가다. 2005년부터 LG전자에서 휴대전화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뒤처지는 기술자가 되는 게 아닐까’ 고민하다가 6년 전 퇴직해 특허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터치스크린, 음성인식, LTE 통신, 클라우드 컴퓨팅, 드론, 게임 등 최근 주목받는 기술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면서 50개의 특허안을 만들었다. “연구소에서는 뭘 해도 티가 나지 않았는데 특허는 내가 할 때마다 바로 피드백이 오니까 정말 재미있더군요. 그렇게 공부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으로 모두의연구소 연구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연구의 방향을 지도하는 것은 아니고 연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거나 연구 도중 막힐 때 함께 고민하는 정도죠.”

연구소는 3개의 세미나실과 하드웨어 작업공간, 로비와 휴게실로 구성된 조촐한 공간이다. 100여명의 연구원이 자율적으로 연구실을 꾸려 랩짱(연구 주도자)을 맡거나 다른 연구원의 연구에 참가한다. 인공지능 딥러닝, 드론, IoT 등이 가장 인기 있는 주제다. 일부 연구팀은 대학과 연계해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디어의 싹을 틔운 연구원들이 언젠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큰 일을 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 소장은 모두의연구소가 토론 중심의 연구를 지향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보다는 함께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게 제 철학이거든요. 누군가 품고 있는 좋은 아이디어에 꽃을 피워주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교육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모두의연구소 같은 열린 연구소가 교육 시장의 혁신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김 소장의 단기 계획은 모두의연구소를 키우는 것이고 장기 계획은 모두의연구소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일맥상통하는 생각이다. “국내 최대 연구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서울보다는 오히려 지방에 이런 연구소가 필요한 실정이라서 서울 연구소가 자리를 잡으면 지방에도 열고 싶습니다. 주어진 과제를 경쟁적으로 수행하는 연구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협업하고 상생하며 연구하는 인프라를 만들어야죠. 우리의 교육 방식대로 모두 따라 하게 되면 모두의연구소가 필요 없어지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 사진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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