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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내진설계’ 되지 않았다?

입력
2016.09.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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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 조사원들이 13일 경북 경주시 첨성대에서 지진 피해 조사를 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 조사원들이 13일 경북 경주시 첨성대에서 지진 피해 조사를 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경주 지진으로 많은 탑들이 난간석이 부러지는 등 파손됐지만 국보 문화재인 첨성대는 지반침하로 기울어진 것 말고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1,400년 전 내진설계의 위력이라고 관심 받을 만했다.

구조적으로나 당시 역사 정황을 고려할 때 첨성대를 “종합적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축물”로 볼 수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첨성대는 중심점을 기점으로 건축물이 360도 대칭을 이루고 있어 어느 방향에서 진동이 와도 안정적으로 견딜 수 있는 원형 구조다. 돌을 완전히 고정시키지 않고 엇갈려 쌓는 점도 완충을 돕는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부재들을 모두 접착시켰을 경우 외부 충격에 부러지거나 깨지기 쉽다”며 “해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기법으로 공사 초기단계부터 건축물 훼손 등을 잡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돌을 쌓아 올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배부름 현상(일부 돌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현상)은 긴 돌을 가로질러 넣는 식으로 방지했다.

무게중심이 아래쪽에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크게 세 부분(기단부ㆍ원통부ㆍ정상부)으로 이뤄진 첨성대는 바깥으로 부푼 아래쪽이 오목한 형태의 윗부분보다 더 넓은 모양을 하고 있다. 여기에 바닥을 1.5m 이상 파고 그 안에 잔돌과 흙, 모래 등을 한 켜씩 다져 쌓는 판축 기법으로 기초를 다졌다.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한반도에서는 모두 2,161차례의 지진이 일어났다(문화재청 2012년 자료). 첨성대 축조 후이긴 하지만 경주에서는 신라 혜공왕 15년(779년) 3월 “민가가 무너지고 죽은 자가 100여 명”(삼국사기)에 이르는 상당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비슷한 지진이 그 전에도 있었다면 재난 상황을 고려해 첨성대를 지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진설계’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덕문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첨성대에 내진설계를 적용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면서 “(굳이 찾자면)상단부 원통을 가로질러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걸어놓은 정자석 정도가 지진에 대비해 특별히 고안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첨성대에 적용된 여러 기법 등을 토대로 “지진에 저항하는 ‘성능’이 있다” 정도로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 것 같다.

한편 지진으로 2㎝ 정도 기울어진 첨성대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전면 해체ㆍ복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은 향후 문화재위원회를 소집하고 추가 점검을 통해 적절한 보존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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