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대선에 비친 미국> (11) 미국 대선에서 정책과 이념의 역할
양당, 정책ㆍ이념 전략적으로 사용
공화당 “미국적 가치” 주장하며
저소득ㆍ소수자 중시 민주에 대응
지지 정당 따라 정책 수용도 달라
미국인, 부동층 적고 선호 뚜렷
청소년기부터 형성된 정당 지지
부동층 30% 넘는 한국과 차이점
역대 선거서 민주당에 유리하게
강점 부각시키는 선거 전략
클린턴, 경제정책 구체적 제시
트럼프 “강한 미국” 복원 나서
인물보다 정책ㆍ이념에 눈길 쏠려
9월26일 월요일 1차 TV토론을 시작으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간 본격적인 정책대결이 펼쳐진다. 아웃사이더들의 돌풍과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 등의 이유로 인물 자체에 대한 집중이 두드러지지만, 동시에 각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과 이념도 조명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대선에서 정책과 이념은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대다수 미국 정치학자는 우리 기대와는 달리 정책과 이념이 미국 대선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후보가 바뀌는 부동층(浮動層)이 3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부동층은 10~15% 남짓인데, 지지하는 당에 대한 선호가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주로 청소년기 동안 부모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정하게 되며, 한 번 정해진 지지 정당은 노년기까지 잘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많은 미국인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유리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해서 믿으며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지역에 모여 살기 때문에 정치와 정책에 대한 유의미한 토론과 설득이 일어나기 힘들다.
부동층이 적고 정당 선호가 뚜렷한 미국인들의 이 같은 특징은 역대 미국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1930년대 민주당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저소득층과 보수 남부의 대연합(뉴딜연합)을 이끌어 낸 이후 1960년대말까지 민주당 지지자들의 수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1.5배 이상을 차지해왔다. 1960~70년대 민주당 노선의 ‘좌 편향’과 1980년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으로 민주ㆍ공화 간의 격차는 서서히 감소했으나, 최근 2008년과 2012년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다시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책과 이념이 미국 대선에서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장 주요한 요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숫자는 많아도 투표율이 낮았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대개 저소득층이거나 소수인종인데, 이들은 생업에 바빠서 실제 투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민주당의 선거전략은 이들의 투표율을 높이는데 집중되어 왔다. 민주당 정책이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는 공화당의 정책이 이들에서 얼마나 불리한지를 알리는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공화당의 대응도 있었는데, 구체적인 정책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강한 미국’이나 ‘미국적 가치’를 강조하며 다소 추상적인 이념에 초점을 두었다.
민주ㆍ공화 양당이 대선에서 정책과 이념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용하는지에 대한 차이는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치며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첫째, 경제정책과 외교ㆍ안보정책에 대해 정당별로 유ㆍ불리가 생겨났다. 둘째, 국민들이 이념과 정책을 대하는 태도가 지지 정당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었다.
미국인들은 대개 민주당이 경제정책을 더 잘 수행해 오고 있다고 믿는다. 일반 국민들의 요구와 이해 관계를 더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구체적인 개별 정책들에 대해서도 민주당 주장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낸다. 연방정부의 사회보장정책 확대, 최저임금 인상, 의료보험 확대, 실업자에 대한 교육지원 확대, 농업 보조금 확대, 연방정부의 교육예산 확대 등이 미국인들 과반수 이상이 지지하는 민주당의 경제정책들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정부가 쓰는 돈의 규모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강하다. 자신이 혜택을 받는 개별 정책은 지지하지만, 정부가 많은 사람을 지나치게 도와주는 데에는 반대하는 것이다. 공화당은 이러한 이유로 ‘작은 정부’라는 슬로건을 과거 선거에서 꾸준히 이용해 왔으며, 재정적자나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경제이슈로 부각될 경우 선거에서 큰 이익을 봤다.
외교ㆍ안보정책은 반대로 민주당에게 전통적으로 불리한 이슈이다. 과거의 경우 1ㆍ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시작할 때 모두 민주당 출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로 민주당이 미국을 전쟁으로 이끈다는 믿음을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었다. 국제문제에 있어서 민주당은 개입주의를 지향하고 공화당은 고립주의를 선호해온 전통도 한 몫을 했다. 이에 미국인들은 외교ㆍ안보정책은 공화당이 더 잘 수행한다고 믿어왔다. 물론 공화당 출신 대통령에 의해 두 번에 걸쳐 치러진 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런 이미지는 많이 약화되었으며, 최근에는 민주당이 평화를 표방하는 정당이라고 미국인들이 인식하기도 한다.
사회정책의 경우, 민주ㆍ공화 어느 한 정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보다는 미국 역사를 거치며 꾸준히 대립하는 면모를 보여왔다. 흑백 갈등, 동성애, 낙태, 총기규제, 그리고 범죄에 대한 정책들이 그 예다. 다만 양당이 비교적 상반된 입장을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미치는 영향은 다소 미미했다. 198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 공화당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기는 하였으나, 사회정책 이슈 때문에 부동층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정한 정책과 이슈에 대해 민주ㆍ공화 양당이 각각 유리하고 불리한 부분이 생기게 된 것은 또 다른 미국적 특징을 만들었다. 국민들이 평상시 이념과 정책을 대하는 태도가 지지 정당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 또는 개별 법안에 대해서는 과반수 미국인들이 민주당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미국적 가치로 표방되는 커다란 이념적 담론에 대해서는 반대로 공화당의 입장을 더 선호하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지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한다. 공화당은 극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민주당은 흑인과 히스패닉에 직접 도움이 되는 정책,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말한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보수적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를 이해하려고 한다. 민주당 정책들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요시한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의 정신에 위배되며,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주정부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원칙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국적 특징을 생각해 보면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과 트럼프 두 후보가 정책과 이념에 대해 보이는 전반적인 태도와 민주ㆍ공화 양당의 선거전략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클린턴 후보와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본인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경제정책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대안을 내어 놓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벌인다. 또 이러한 정책이 어떠한 계층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는 미국적 가치가 위기에 처했으니 다시 강한 미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추상적인 슬로건을 내세운다. 정책대결에 있어서 두 정당 모두 각자 자신들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셈이다.
박홍민ㆍ위스콘신대(밀워키)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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