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 곳은 국내에 거주하는 네팔인들이 주말이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는 사랑방 같은 장소다. 그래서 ‘네팔 거리’란 별칭도 붙었다. 추석 연휴 첫날인 이날은 유독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근 지하철역인 서울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나와 50m쯤 이어지는 거리를 걷는 동안 인파에 밀려 멈춰선 것이 수 차례. 평소 옥수수를 팔던 포장마차는 네팔 전통 만두 ‘마마’를 파는 가게로 변신했고, 거리 곳곳이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로 가득했다. ‘직업소개소’라는 한글 간판만 없었다면 영락없이 네팔의 한 시장통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추석은 네팔인들에게도 큰 명절이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조상과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의식을 치르는 네팔 전통 명절 ‘더사인(Dashain)’과 기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더사인은 10월 중순이지만 고국에 돌아가기 어려운 네팔인 노동자들이 10여 년 전부터 이 곳에 미리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향수를 달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네팔 상점들도 명절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미야 구룽(44ㆍ여)씨가 운영하는 네팔 전통음식점 ‘데우랄리 네팔’에는 이날 하루 평일보다 수십배가 많은 손님이 몰려 들었다. 구룽씨는 14년 전 한국에 시집 와 10년 넘게 ‘한국 며느리’로 살다가 올해 2월부터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 염소 고기로 만든 ‘컷고 마수’와 감자, 콩 등을 섞어 만든 ‘타르 카리’ 등 네팔 전통음식이 인기 품목이다. 구룽씨는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아 정신이 없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고국 노동자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대접할 생각”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팔 거리를 찾은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탕가 라마(35)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배경화면에는 ‘쵸판디 촐’이라 부르는 네팔 전통옷을 입은 아내와 여섯살, 두살 배기 딸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네팔 바니바시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고교 교사였던 그는 가족들을 위해 2014년 한국행을 택했다. 지금 일하는 충남 아산의 석고보드 공장에서 버는 돈이 교사 월급의 7배나 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지난해 초 발생한 네팔 대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탕가씨는 가족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는 “16일부터는 다시 출근을 하게 돼 이틀 만이라도 제대로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이 곳을 방문했다”며 “조금만 거리를 걸어도 여기저기서 부르는 친구가 많아 즐겁다”고 말했다.
탕가씨를 따라 4개월 전 한국에 들어 와 경기 김포의 한 화훼농장에서 일하는 동생 밀란 라마(27)씨도 창신동에서 첫 명절을 맞았다. 네팔은 일자리가 부족한데다 임금수준도 낮아 대부분의 청년들이 해외취업의 문을 두드린다. 밀란 씨는 “일은 힘들어도 사장님과 사모님이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이해해 줘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창신동에 모인 네팔 사람들은 1,000여명. 이들 중 치트완족 출신들은 오후 네팔 유명가수인 ‘산자나’와 ‘라주 라마’ 등을 초청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공연을 주최한 저건타너 올리(51)씨는 “공연 수익은 모두 네팔의 어려운 아이들이나 한국에서 지낼 곳 없는 네팔인들을 돕는데 쓰인다”고 말했다. 시토울라(48) 네팔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은 “2000년대 초반 네팔 거리가 생긴 뒤부터 전국에 흩어져 있는 네팔인 3만여명 중 10%인 3,000여명이 명절이면 창신동을 찾는다”며 “이 곳에서 짧게나마 동포의 정을 느끼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ㆍ사진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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