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오셨어요?” “…….”
지난해 7월 초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바지선 위. 물어도 말이 없다. 20대 후반 한국 청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한데 그뿐이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나 싶던 순간 뭔가 스쳐갔다. ‘그래, 맞다. 부랴트족.’ “즈드라스뜨 부이쩨.” 기껏 몇 마디 하는 러시아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봤다. 또 묵묵부답이다. 부랴트어만 할 줄 아는지, 진짜 말을 씹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차피 대화는 불가능했으니 부랴트족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했다.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곤 돌아섰지만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일본이나 중국인도 아닌 우리네 얼굴이었다. 그 얼굴로 명동 한 복판을 돌아다녀도 외국인 호객 전단 하나 받지 못할 몽타주였다.
바이칼이다.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로 4시간 걸려 바이칼 호수 선착장에 도착했더니 바지선 하나가 출발 시간이 임박한 듯 승선을 재촉하고 있었다. 항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배를 타야했던 일행이 투덜댄다.
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샤먼의 호수’인 바이칼이었고, 목적지는 한민족의 시원지 알혼섬이었다. 한반도의 순례객들은 이 사실 하나 만으로 필로폰 주사 몇 대 맞은 듯 들떠 있었다. 배 안에서 부랴트족을 만난 것도 여행의 묘미였다.
바지선은 20분 만에 알혼섬 남단에 도착했다. 관광용으로 개조된 군용 지프 ‘우아직’은 양쪽으로 늘어선 기념품 가게를 뒤로 하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운전기사도 부랴트족이다. 눈이 시리게 푸른 바이칼을 끼고 북쪽으로 40분 정도 달리니 후지르 마을이다. 원주민의 집과 여행자용 숙소가 즐비한 마을을 뒤로 하고 지프는 북으로 달린다.
1,500여 명의 부랴트족이 알혼섬에 살고 있지만 사람만 우리와 닮은 것이 아니었다. 서낭당, 솟대, 아기 탯줄을 문지방 아래 묻는 토속 전통, 강강술래와 흡사한 춤, 단군신화와 비슷한 아바이 게세르 신화가 모두 우리와 비슷했다.
‘사간후순’으로 불리는 삼형제바위에는 바이칼판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다. 바이칼 세상을 연 3형제 중 한 명이 인간으로 변한 백조의 옷을 감춘 후 결혼까지 하게 됐다. “한 번만 옷을 입게 해달라”는 간청을 들어줬더니 백조가 되어 바이칼 호수 위로 날아가버렸다는 이야기다.
알혼섬 언저리에는 상인들의 제물이 된 처녀가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 신들의 세계에서 살게 됐다는 전설도 숨쉬고 있다. 바이칼은 심청전 인당수와도 닮았다.
섬 최북단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니 하보이곶 절벽이다. 가는 길 중간 나무 곳곳에 오색 천이 내걸려 있다. 절벽 위에는 오색 줄을 묶은 기둥과 작은 돌탑들이 즐비했다. 시골 서낭당에서 보던 풍경이었다. 지금도 샤머니즘이 부랴트족 신앙의 20%나 차지하고 있다는데, 2009년에야 전기가 들어온 알혼은 섬 전체가 샤먼의 세계였다. 바다보다 더 바다 같은 바이칼에 소원 하나를 남겨놓고 돌아섰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남쪽으로 돌아서는 길에서야 여행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르쿠츠크에서 왔다는 젊은 남녀 한 쌍은 자전거로 섬을 일주하고 있었다. 짧은 바지에 여성은 스포츠브라, 남성은 아예 웃통을 벗은 채로 활짝 웃는다. 덜컹거리는 지프 뒤로 굉음이 일더니 한 무리의 오토바이족들이 추월 경쟁을 벌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오토바이의 흙먼지가 싫지 않았다. 젊음은 도전이다.
후지르 마을 통나무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저녁까지 먹고 나니 땅거미가 새파랗게 지기 시작한다. “자러 왔나”며 원주민 마을 답사를 하자는 목소리에 못이기는 체 따라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가게를 하나 봐놨다며 밤길을 재촉한다. 가로등도 없고 불 켜진 집도 몇 되지 않았다. 가게에서 바이칼 호수에서만 잡힌다는 물고기 오믈에 맥주 한 잔으로 뭔가를 “위하여” 건배했다.
2,500만년 역사의 바이칼 호수는 담수량이 세계의 20%, 러시아의 9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다. 면적은 3만1,500㎢로 대한민국 3분의 1 크기다. 남북 길이 636㎞, 너비 27∼79㎞, 둘레 2,200㎞, 물밑 가시거리가 최대 40.5m, 최대 수심이 1,742m인 이곳은 인류의 시원(始原)으로 손색이 없다.
이 호수가 얼어붙으면 어떻게 될까.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1m 두께의 얼음덩어리로 변한 바이칼은 살벌한 냉기를 끊임없이 남쪽으로 내뱉는다. 대륙성 한파의 주인공, 동장군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완공되기 전 러일전쟁 당시인 1904년에는 한 달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대체할 철도가 바이칼 얼음 위에 깔리기도 했다. 무게 때문에 기관차와 객차는 각각 분리해서 말이 끌었다.
그런 바이칼에서 잠이 쉽게 올 턱이 없었다. 호숫가를 어슬렁거리다 생각에도 잠겨보고, 카메라에 바이칼의 밤을 담기도 했다. 춘원 이광수도 이곳을 거쳐갔다. ‘부랴트족인 주인 노파는 벌써 잠이 들고 석유 등잔의 불이 가끔 창틈으로 들이쏘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소. 우루루탕 하고 달빛을 실은 바이칼의 물결이 바로 이 어촌 앞의 바위를 때리고 있소.” 그의 소설 ‘유정’의 일부다.
바이칼 부랴트 사람들은 자식 이름 뒤에 아버지, 어머니를 붙여 부른다. 우리가 ‘철수 어머니’, ‘영희 아버지’라고 부르는 식이다. 엉덩이에는 푸르스름한 몽고반점도 있다. 씨름을 즐기는 민족은 많지만 우리와 부랴트족만 샅바를 사용한다. 공통분모가 한 두개가 아니다.
우리의 뿌리, 바이칼에서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 밝기 무섭게 모래사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리저리 헤매던 중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나오는 두 명의 젊은 러시아 여성이었다. 멀리서 봐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마침 손에는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가 있었다. 바이칼이 주는 덤이었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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