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주거환경, 생활고에
다섯 식구가 힘겨운 명절 맞이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시름만
남편은 “연휴에 일 못해” 한숨
“고향, 부모 생각만 간절해요”
“엄마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명절 되니까 더.”
추석을 꼭 일주일 앞둔 8일 서울 송파구 마천동 반지하 월셋방에서 만난 응우웬 티엔(28ㆍ가명)씨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막내딸 윤아(가명)양을 품에 안고 서툰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2014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3~4시간 걸리는 푸더 지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티엔씨는 때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3남4녀 중 막내 딸로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자랐지만 한국에 온 뒤로 가족 얼굴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아기 있으니 (가기) 어려워요. 엄마 아빠 사진 베트남에서 왔는데 더 보고 싶어요” 티엔씨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이은 출산 때문에 생긴 산후 우울증과 넉넉지 않은 살림은 추석을 앞둔 그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 땅을 밟을 당시 임신 21주 상태였던 그는 큰 아들 윤환(2ㆍ가명)군을 낳기 전만 해도 한글학교와 이주여성을 위한 다문화지원센터 등에 다니며 한국사회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러나 첫 아이 출산 후 1년이 채 안돼 둘째 딸 윤지(1ㆍ가명)양을, 9개월이 지난 올해 3월 막내 딸을 모두 연년생으로 낳으면서 우울 증세가 생겼다. 최근엔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산후우울증 고위험군 진단까지 받았다.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치료는커녕 5평 남짓한 반지하 방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온전히 티엔씨 몫이다.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다. 젖먹이 막내 딸을 건사해야 하는 탓에 어린이집에 다니던 첫째, 둘째의 등ㆍ하원도 포기했다. 주거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방은 환기가 안돼 늘 곰팡이가 피어 있다. 젖병을 하루만 방치해도 곰팡이가 서릴 정도여서 아이들은 천식과 기관지염을 달고 산다. 방음도 제대로 안 돼 세 아이의 울음 소리가 새어나갈까 노심초사다. 얼마 전에는 심하게 보채는 막내의 울음을 들은 누군가가 대문에다 ‘소음 때문에 살인이 날 수 있다’는 쪽지를 붙여두기도 했다. 또 집 주변이 재개발 공사 현장인데다 설상가상 집 앞으로 하수구가 지나 악취가 집 안까지 들어온다. 티엔씨는 “큰 아이가 집 앞을 지나는 중장비를 자주 보다 보니 매일 포크레인 장난감만 갖고 논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티엔씨와 남편 심모(42)씨에게 추석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야속한 날일 뿐이다. 25인승 버스를 빌려 운전하는 심씨의 일감이 긴 연휴로 3분의1로 줄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5시 집을 나서는 그는 평일에는 출ㆍ퇴근하는 직장인과 학생을, 주말에는 유치원 견학이나 교외로 떠나는 사람들을 태워다 주며 돈을 번다. 쉬지 않고 일주일을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월 160만원에 불과해 다섯 식구가 생활하기에 빠듯하다. 심씨는 “다음달 가족이 고생하지 않으려면 늦은 밤까지 바짝 일해야 해 추석 연휴가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추석이 다가올수록 부모님 사진을 어루만지는 횟수가 부쩍 는 아내를 바라보는 일도 맘이 편치 않다. 심씨는 “명절에 부모님을 뵙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고향에 가기는커녕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남편의 말에 티엔씨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명절이 되면 가족이 둘러 앉아 ‘맹쯩(녹두와 찹쌀을 섞어 떡으로 만든 뒤 바나나 잎을 싸 쪄먹는 베트남 전통 음식)’을 만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함께 베트남에 가서 맹쯩을 먹고 싶어요.” 후원 문의 월드비전(www.worldvision.or.kr)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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