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오르간은 흔히 ‘신의 음성을 대리하는 악기’, ‘악기의 제왕’으로 불린다. 경건한 음색, 다양한 선율이 빚어내는 초월적인 소리는 듣는 사람을 압도한다. 해외 대규모 연주홀에서 ‘공연장의 얼굴’로 불리지만 국내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듣기는 쉽지 않았다. 대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오르간이 설치돼 일반 관객들은 연주회 소식을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됐지만 클래식 전용 홀이 아닌 다목적 공연장이어서 연주에 한계가 있었다.
이달 말 굵직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가 잇달아 열린다. 금세기 최고의 오르가니스트 장 기유의 내한공연과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의 생상스 교향곡 3번 연주다. 지난달 말 문을 연 롯데콘서트홀에 68스톱(파이프 묶음에 신호를 보내 특정 악기 소리를 내도록 해주는 장치. 스톱의 숫자만큼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5,000여개의 파이프를 지닌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며 롯데문화재단이 기획한 야심 찬 공연들이다. 25억원을 들인 오르간은 오스트리아의 ‘빈 뮤직페라인 홀’ 파이프를 제작한 리거사거 맡아 완공까지 2년 넘게 걸렸다.
20일 독주회를 여는 장 기유(86)는 12세에 프랑스 서부 앙제의 생세르주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된 세계 최상위급 연주자다. 교수, 오르간 제작자, 작곡가, 시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2010년 프랑스가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으나 “정부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다”며 항의의 표시로 수훈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이번 공연에서 프랑크 ‘영웅적 소품’,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리스트 ‘바흐의 이름에 의한 환상곡과 푸가’, 자신이 작곡한 ‘사가 4번과 6번’ 등 70여 년 음악 인생의 정수를 보여준다. 입장권이 일찌감치 매진돼 이번 주 추가로 172석을 더 만들었다. 티켓 예매는 롯데콘서트홀 홈페이지(www.lotteconcerthall.com)에서만 가능하다.
23일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이 연주할 생상스 교향곡 3번은 파이프 오르간과 오케스트라 음색의 조화를 이룬 곡이다. 국내 실연은 전자 오르간 소리를 스피커로 확성해 파이프 울림을 대신하는 식이었다. 지난달 롯데콘서트홀 개막 공연에서 서울시향이 연주한 바 있다. 앞으로 한동안 실황 연주를 듣기는 어려울 테니 챙겨볼 만하다.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은 정명훈이 지휘 인생을 시작한 악단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정명훈은 1984년 전신인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이번 연주에서는 정씨가 서울시향 예술감독 재직시절 부지휘자로 있었던 성시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 1544-7744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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