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예상보다 빨리 등기이사를 맡는다. 삼성전자는 12일 이사회를 열어 다음달 임시주주총회에서 이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의 경영을 책임지는 ‘이재용 체제’의 공식 출범이다. 등기이사는 회사 경영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등기이사를 맡지 않는 오너가 적지 않다는 것과 비교할 때 남다른 책임경영 의지라고도 볼 만하다. 이제는 대주주가 아닌 경영자로서 본격적 평가를 받겠다는 뜻도 담겼을 것이다. 경영권 승계 일정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 회장의 와병으로 리더십이 불안정하고, 구심점이 약화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갤럭시노트7 전량 리콜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해 이 부회장이 조기 등판한 측면도 없지 않다. 갤럭시노트7 사태는 이미 국경을 넘어 세계적 쟁점이 되었다.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비행기 내 사용제한 등의 조치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세계 최정상의 IT기업이라는 삼성전자 이미지에 금이 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 신속한 의사결정 등 오너경영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를 수습하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앞서 이 부회장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질병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자 전면에서 해결을 지휘했다. 또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공격을 견뎌 내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도 성사시키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공격적 투자를 통해 삼성그룹 전체의 중장기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야 할 책임이 무겁다. 아직 그룹 내 지분 문제가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데다, 그동안 진행해 온 사업 구조조정과 계열사 재편 작업도 마무리해야 한다. 삼성의 위기는 곧 우리 경제의 위기일 수 있다. 이 부회장의 전면 등장이 성공하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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